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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제자 자유는 동료인 자장을 두고 “어려운 일을 잘해내지만 아직 인(仁)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평했다. 자장은 재주가 뛰어나고 포부도 커서 남들은 하지 못하는 일을 어떻게든 해내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높은 행실에 비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성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주희는 이를 성실하고 측달한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측달(惻달)은 한문에 자주 쓰이지만 우리말로 옮기기 어려운 어휘 가운데 하나다. 글자로는 매우 슬프다는 뜻이고, 오랜 출전인 <예기>에서도 어버이의 상을 당한 자식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어휘가 사용되어온 맥락을 알수록 슬픔으로만 번역하고 말기에는 부족함을 느낀다. 측달은 그저 슬픈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측달자애(惻달慈愛), 지성측달(至誠惻달) 등으로 확장되어 자신을 넘어 타인의 아픔에 대한 깊은 공감이 간절한 바람과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지점, 바로 인(仁)의 한 측면을 담은 말로 사용되어 왔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인(仁)이란 부드럽다는 뜻이니, ‘불인(不仁)’은 부드럽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아픔과 가려움, 추위와 더위를 느끼지 못하거나 뜸을 뜨고 침을 놓아도 감각이 없는 상태를 불인이라고 한다.” ‘불인’의 의미를 설명한 <동의보감>의 한 대목이다. 그래서 성리학자들은 인(仁)을 ‘마음이 아픔에 마비되지 않음’으로 설명하곤 했다. ‘불인’의 반대편에 측달이 놓인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의 아픔을 지극하게 공감하는 데에서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마음이 시작된다.

불인의 끝은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죽음이다. 그러나 측달에서 비롯되는 사랑은 병아리 솜털처럼 부드러운 생명이다.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 봄이다. 동지가 지난 지 꽤 되었지만, 계절의 변화를 부쩍 느끼는 요즘 주역의 복괘(復卦)를 다시 떠올린다. 온 세상이 음일 때 양 하나가 땅 밑에서 서서히 그러나 뚜렷이 올라오는 모양이다. 얼어붙은 땅에서 새로운 생명의 싹을 틔우려면 많은 고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뜻한 도움이 없으면 꽃샘추위에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릴 수도 있다. 당위만 내세운 섣부른 행위는 오래가기 어렵다. 깊은 공감이야말로 의무를 자발로 만드는 힘이다. 측달과 사랑의 작은 실마리들이 곳곳에서 움터 오르는 봄을 소망한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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