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벌써 12월이다. 한 해의 정리와 연말결산을 하는 달이니 나도 첫 원고를 쓰던 때로 돌아가 ‘원고결산’을 해본다. 이 지면에 처음 실린 글은 최소 3년은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금연에 성공하려면 소문부터 내라는 조언을 적용해 누가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아도 마구 소문을 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항공기 승무원마저도 비행기를 타기 힘들었지만, 아무튼 나도 3년간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육로가 막힌 대한민국에서 비행기란 무엇인가. 야간버스에서 자다 깨 여권 검사를 당하는 경험처럼 새로운 가능성, 이국적인 상황, 낯선 여행 그 자체다. 하지만 동시에 시간당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운송수단이기도 하다. 유럽환경청(EEA)은 승객 한 명당 비행기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버스의 4배, 기차의 20배에 이른다고 밝혔다. 같은 거리를 비행기 대신 철도로 이동할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95%까지 줄일 수 있다. 이는 항공기의 뜨거운 배기가스와 찬 공기가 섞여 만들어진 비행운 속의 수증기나 산화질소의 온난화 효과는 제외한 수치다.

쓰레기도 어마어마하다. 2018년 비행기에서 670만t의 쓰레기가 나왔다. 면세점 물건과 가방을 둘둘 만 일회용 랩, 이어폰과 담요를 싼 비닐, 1회용 용기 등 죄다 과대포장에 일회용품을 사용한다. 이 중 20~30%는 아예 손도 대지 않는 음식이다. 또한 비행기에서는 분리배출도 하지 않고 비우고 헹구지도 않으니 재활용도 어렵다. 이는 나라별로 다른데 한 항공기 승무원에 따르면 헬싱키 공항에서는 기내 폐기물을 분리배출해야 하는데, 인천공항에서는 죄다 섞어서 버린다고 했다.

이에 비행기와 헤어질 결심을 한 후 다른 여행을 실험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무료 숙박공유를 통해 내 공간에서 여행자와 함께 지내는 거다. 그런데 최근 함께 지낸 멕시코 친구는 부산에 기차를 타고 갔다가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 KTX보다 비행기가 더 저렴해서라고 했다. 비행기는 이착륙 시 전체 연료의 4분의 1을 사용하므로 단거리 비행은 거리당 탄소배출률이 가장 높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 2~3시간 미만 거리에 항공기 운항을 금지하고 스웨덴 정부가 국내선 노선이 많은 브롬마 공항을 폐쇄한 이유다. 이를 국내에 적용해보면 웬만한 국내선은 모두 운항 금지다. 

새해에 다시 비행기와 헤어질 결심을 해본다. 내 남은 인생에서 비행기를 타는 최대 횟수를 6회로 정했다. 비행기 ‘총량제’의 좋은 점은 벼르고 별러 길고 긴 여행을 꿈꾸게 하고 단거리 비행은 애초에 안 하게 된다는 점이다. 은퇴해서 하와이에서 살고 싶다던 정세랑 작가는 “여행의 기회를 아직 더 여행해야 할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싶다. 찾아낸 보물들을 충분히 품고 있으므로 비행기를 덜 타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한다”라고 여행기를 끝마쳤다. 이런 마음이 정책적으로 연결되면 좋겠다. 비행기보다 더 편리하고 더 저렴하게 기차 여행을 하고 비행기를 탈수록 마일지리 대신 누진 탄소세를 부과하면 어떨까. 신공항 건설비와 누진 탄소세를 기반으로 더 편리하고 저렴한 대중교통을 만들고 지속 가능한 항공연료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연재 | 녹색세상 - 경향신문

567건의 관련기사 연재기사 구독하기 도움말 연재기사를 구독하여 새로운 기사를 메일로 먼저 받아보세요.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검색 초기화

www.khan.co.kr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7번째 원전 가동에 던진 질문  (0) 2022.12.16
생뚱맞은 ‘K문샷’  (0) 2022.12.02
플라스틱과 이별 시간이 온다  (0) 2022.11.25
2050 제로성장과 배출제로  (0) 2022.11.18
하는 데까지 후회없이  (0) 2022.11.14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