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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윌리엄 왕세자 부부가 지난달 30일 미국 보스턴을 방문했다. 왕세자 부부는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본인이 설립한 조직인 어스샷 상(Earthshot Prize)을 주기 위해서 미국을 찾은 것이다. 왕실이 최근 몇 년 동안 채택한 대의명분인 이 상은 그들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나, 어찌 되었든 기후 문제에 국제적인 여론을 환기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구태여 영국에서 미국까지 와서 시상식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올해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문샷(Moonshot) 60주년이 되는 해이며, 보스턴은 미국 혁명의 요람이자 케네디 가문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어스샷이라는 상의 이름은 케네디 대통령의 “문샷” 이니셔티브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문샷’은 ‘달 탐사선의 발사’를 뜻하지만 담대한 목표를 향한 혁신적인 프로젝트의 상징으로 자주 쓰인다.

1962년 9월12일 케네디 대통령은 달을 조금 더 잘 보기 위해 망원경의 성능을 높이는 대신 아예 달에 갈 수 있는 탐사선을 만들겠다는 창의적인 생각을 했고, 1969년 마침내 우주인이 달탐사를 이뤄냈다. 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으며 미국인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 희망이 용솟음치게 만든 이 프로젝트로 관련된 산업 또한 부흥했다. 그래서 지금도 실리콘밸리에서는 단순히 생각하는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곧바로 실행하는 능력, 불가능해 보이는 혁신적 사고를 실제로 만들어 나가는 것을 ‘문샷 싱킹’이라 부른다.

문샷과 어스샷.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이 10년 안에 달에 사람을 착륙시키겠다는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세운 것처럼 윌리엄 왕자도 향후 10년 이내에 지구를 복구할 혁신적인 솔루션을 발견하고 확장하기 위해 어스샷을 설립한 것이다. 어스샷은 2020년 설립된 이래 자연 복원 및 보호, 맑은 대기, 해양 복구, 쓰레기 없는 생활, 그리고 기후 행동 등 매년 5개 분야의 우승자에게 각각 100만파운드(약 15억원)의 상금과 아름답고 독창적인 메달을 수여한다. 또한 상금 수여로 거치는 것이 아니라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전문 컨설턴트의 지원과 글로벌 자금의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준다. 왕실 클래스에 맞는 공헌의 방식에 주미 영국 대사는 ‘슈퍼볼 관전’에 버금가는 흥분된 일이라고 자랑스럽게 언급했다.

문샷은 미국인들의 자긍심만 높여준 것이 아니다. 아마 1970년대 초등학교를 다닌 586세대 또한 문샷의 영향을 받았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 즐겨 불렀던 ‘앞으로’라는 동요는 윤석중 선생이 아폴로 달착륙을 보고 영감을 받아 1970년에 발표한 곡이다. “온세상 어린이가 하하하하 웃으면/ 그 소리 들리겠네 달나라까지/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이 힘차고 희망적인 노래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어린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역할까지 한 것이다.

비전이란 그런 것이다. 담대한 혁신의 DNA는 사라지지 않는다. 영감을 받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꿈틀대고 피어나게 하는 힘을 준다. 국가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미래우주 경제비전’을 발표했다. 조금 생뚱맞아 아쉬웠지만 성공을 빈다. K문샷 또한 K어스샷으로 도약할 날, 오려나?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연재 | 녹색세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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