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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대한민국 도시 중 지역 단위에 가치가 부여된 유일한 곳이다. 1980년 군부독재의 봄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에 이른 2017년 봄까지 광주가 지불한 비용은 적지 않았다. 5·18 광주항쟁 자체가 박정희 패러다임에 가장 오래, 가장 질기게, 가장 직접적으로 맞선 투쟁이었다.
한 50대 광주시민은 박 전 대통령 파면 이후 “호남은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평화(촛불)로 계엄령(태극기)을 덮었고, 국가전복세력으로 매도됐던 ‘국민’에서 박정희·박근혜 시대라는 반동을 물리친 ‘시민’으로 태어났다는 의미일 테다. 지금 광주는 ‘시민의 기억이 지역을 만든다’는 운동을 벌이며 국가주의에 짓눌려 평생을 ‘을’로 살아온 회한을 벗어나는 중이다. 계엄군 총탄에 스러진 시민군에 피를 나눠줬던 적십자병원 앞 행렬을 잊지 말자며, ‘5·18 헌혈의 날’을 제정하자고 외치며 말이다.
이런 역사 앞에 더불어민주당은 어떤 모습인가. 한 지인은 ‘늙었지만, 여전히 힘 있는 부모’(호남)와 ‘다 컸지만, 독립해 내보내기엔 여전히 불안한 자식’(민주당)에 빗댔다. 애먹이는 자식이란 말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식은 수십년 동안 어지간히 부모를 힘들게 했다. 민주화 성지라는 표상과 세속적 욕망 사이 갈림길로 몰아세웠다. 몰표를 주든 안 주든 지역주의로 매도했다. 광주 정신은 불우한 시대의 희망이어야 한다며 내려놓기도 힘든 버거운 짐을 지게 했다. 안으론 어떤가. 광주만 해도 엘리트 정치의 독점이 어느 지역보다 심한 곳이다. 공고한 기득권이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어 민심이 반영될 통로조차 없다. ‘진보적 유권자 대 보수적 정치권’이라는 이중 구조가 강고할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광주, 호남이었다. 민주당의 ‘일당독재’ 메커니즘이 만든 폐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호남의 선택을 물었다. 주적(主敵)이 사라진 상황이라 정권교체가 확실하다는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전략적 집단성이 옅어진 대신 깐깐한 정권교체를 원했다.
시대정신과 호남의 조화를 꼽는 의견부터 그렇다. 기득권 청산이라는 시대정신을 호남에 적용하면 종북몰이와 ‘우리가 남이가’로 상징되는 패권적 지역주의를 없애야 한다는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 호남을 괴롭혀 온 빨갱이 콤플렉스는 지역을 넘어 한국 사회 이념과 정치의 모순을 끊임없이 키웠다. 이런 차원에서 문재인 후보의 전두환 표창장 논란과 오거돈 부산지역 상임선대위원장의 ‘부산 대통령’ 발언은 시대정신과 호남의 조응에 생채기를 냈다.
호남을 존중해달라는 목소리도 컸다. 호남홀대론에 대한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금남로와 피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달라는 것이다.
호남이 안희정 후보의 대연정 제안을 매섭게 비판하는 까닭이다.
한 지인은 “박정희·박근혜 세력과 손잡는다는 것도 내키지 않지만 백번 양보해 국가운영을 위해 대연정이 필요하다고 해도 ‘시민’이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했다. 정치권끼리 지분 나눠 먹기에 그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호남 대표성도 결국 지역 국회의원, 토호세력들이 가져갈 것이라는 우려다.
광주·전남 시민사회단체는 최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발의한 개헌안에 맞서 시민권을 강조하고, 촛불 의미를 ‘풀뿌리 민주주의와 시민 정치역량 강화’로 규정했다. 시대정신과 호남의 조응, 호남 존중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다.
민주당은 오는 27일 호남의 선택을 기다리는 중이다. 경선 선거인단 214만3330명 중 호남은 약 27만명이다. 수도권(약 121만명)에 견주면 미미한 규모다. 그러나 호남의 정치적 무게는 가볍지 않다. 호남선엔 유난히 눈물이 많다.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호남의 눈물에서 민주당도 정권교체도 피어나길 바란다. 하물며 봄이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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