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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공부하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벌이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야기가 사라진 책에 미쳤다. 이름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책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런 책은 존재했으되 존재하지 않았던 책이다. 정작 사람을 더 애달프게 하는 것은,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 책이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수도원에만 비장되어 있는 그 책,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을 둘러싸고 얼마나 흥미진진한 사건이 벌어졌던가. 이야기는 우리나라 역사에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 책으로 번졌다. 만약 그런 책이 다시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그 책을 소유하게 되었다면?

그런 책으로 어떤 책이 있는가? 그중 누구나 동의하는 책은 신라시대 때 향가를 모은 <삼대목(三代目)>이었다. 알다시피 신라시대의 문학은 남은 것이 별로 많지 않다. 신라 말기 인물인 최치원을 제외하면 문집을 남긴 사람도 없다. 신라라는 이름에 비해 문학작품은 그야말로 쓸쓸하고 적막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향가만 해도 그렇다. 진성여왕 때 대구화상(大矩和尙)이 엮었다는 향가집 <삼대목>이 전해졌다면 신라시대의 문학과 언어, 사회 등에 대해 우리는 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일본은 진성여왕보다 약 1세기 전인 나라시대(710~794)에 엮은 노래집 <만엽집(萬葉集)>이 남아 있다. 실린 노래는 4500수가량이다. 이러니 <삼대목>이 실전된 것이 어찌 아쉽지 않으랴? 한 친구는 <삼대목>이 나오면, 그리고 그것이 자기 것이 된다면, 어디 사람 없는 데로 가서 연구에 전념하여 일대 저작을 내겠노라고 하였다.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갸륵한 자료 독점욕, 연구욕이라서 이내 다들 나도 나도 하면서 찬동해 마지않았다.

그런데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 것으로 알았던 책이 다시 불쑥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한다. 판소리 12마당은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 <배비장타령> <변강쇠타령> <강릉매화타령> <옹고집타령> <장끼타령> <무숙이타령> <숙영낭자타령> 등이다. 이 중에서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적벽가> <수궁가>는 지금도 불리고 있다. 이따금 TV를 통해 공연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그 외 <배비장타령> <변강쇠타령> <옹고집타령> <장끼타령>은 노래로 불리지는 않지만, 소설로는 남아 있어서 어떤 내용인지는 알 수 있다. 하지만 <강릉매화타령> <무숙이타령> <숙영낭자타령>은 노래도 내용도 아주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것이기에 판소리 연구자, 혹은 소설 연구자들은 더욱 관심이 높다.

세상 살다 보면 가끔은 희한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 서울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종철 교수에게서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김 교수는 판소리와 판소리계소설 전문가이다. 어느 날 김 교수는 사라졌던 <무숙이타령>을 발견했다고 하였다. 사라진 것이 어디서 나타났다는 것인가? 원광대 박순호 교수가 평생 모은 필사본 한글소설을 수십 책의 영인본으로 발간했는데, 그 책 1권의 첫머리에 <무숙이타령>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이 소설전집은 어지간한 대학도서관에 다 있었고, 나 역시 그 전집의 첫 권을 도서관 서가에서 빼어서 본 적이 있었다. 왜 나는 <무숙이타령>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인가.




그 전집에 실린 <무숙이타령>의 제목이 ‘무숙이타령’이 아니라, <게우사>였기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우사’는 ‘誡愚詞’로 어리석은 사람을 경계하는 말이란 뜻이다. 이 소설의 내용은 돈 많은 사내 무숙이가 평양 출신으로 서울의 기적(妓籍)에 매이게 된 의양이에게 반해 살림을 차리고, 의양이에게 자신의 호기로움을 자랑하느라 재산을 유흥에 탕진하자, 의양이가 그 버릇을 고치기 위해 본처와 무숙이의 친구와 짜고 재산을 다 털어먹고는 알거지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무숙이를 회개하게 하려는 계획이었으니, 일종의 탕자 길들이기인 셈이다. 이 소설은 18, 19세기 서울 시정의 유흥풍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어 조선후기 사회풍속사에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만약 김종철 교수처럼 판소리소설에 전문가가 아니고 부지런한 연구자가 아니었더라면 지금까지도 이 소설은 공간된 채로 실전판소리로 불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슷한 사례로 <설공찬전>의 출현도 있다. 성종 때 문인인 채수(蔡壽)는 <설공찬전>이란 소설을 지었다. 이게 불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당시 대간들이 채수를 처벌해야 한다고 성종에게 요구하기도 했으니, 문제작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 역시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이름만 문학사에 남았을 뿐이다. 조선전기 소설사를 구성하는 연구자들은 이름만 남은 이 소설에 대해 이런저런 추리를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서경대 이복규 교수가 이 소설을 찾아냈다. 이 교수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의뢰로 조선전기의 문인 이문건(李文楗, 1494~1567)의 <묵재일기>를 탈초하고 있었다. 초서로 쓰인 일기를 해서로 옮기는 작업이다. 그런데 옛날 책은 종이를 접어서 한 장으로 쓴다. 접힌 부분은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종이의 반을 못 쓰는 것이 아까운 일이다. 그래서 어떤 책은 한 면을 다 쓴 책을 뒤집어서 그 이면을 밖으로 노출시켜 거기에 무언가를 쓰기도 한다. <묵재일기> 역시 그런 재활용 책이었던 모양이다. 이 교수는 작업을 하다가 그 이면에 무언가 쓰여 있는 것을 보고 궁금해 뒤집어 보았다. 읽어보니 뭔가 자신이 아는 지식과 접하는 곳이 있다. 더 읽어보니 사라진 <설공찬전>이 아닌가. 공부하는 사람에게 이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그 다음은 다 아는 이야기다. 논문을 써서 발표하고 번역해서 책을 내었다.

나 역시 그 뒤 옛책을 보면 혹시나 하고 이면을 뒤집어 보는 버릇이 생겼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행운이 오지는 않는 법이다. 하하!

   

강명관 |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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