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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점점 불어나면 저 방으로 옮겨다 쌓는다. 아이들이 자라서 서울로 떠났으니 빈방이다. 책장을 사서 벽면에 가득 채우고 거기에 넘쳐나는 책을 꽂는다. 한참 지나면 그것도 모자란다. 다시 방 하나를 비우고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버리는 책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거기 딸려서 오만 가지 종이뭉텅이, 문서 따위가 나온다.

책을 옮기다가 오래된 상자 하나를 열었더니, 정말 가관이다. 옛날 노트, 자료를 옮겨 적은 카드, 발표문 요지, 그리고 논문 복사한 것이 쏟아져 나온다. 가장 양이 많은 것은 역시 논문이다. 스테이플러로 세로로 세 번 찍고 맨 앞면에 논문이 실린 잡지 이름을 붉은 글씨로 적어둔 것이었다. 20대 중·후반 석·박사 과정 때 복사해서 정성껏 제본한 것과 30대 중반 책을 쓰기 위해 읽으려고 모아둔 것들이다. 그동안 몇 번 버릴 기회가 있었지만, 혹시 하고 버리지 못한 것들이다. 하지만 역시 다시 읽을 기회가 없어 상자 속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미련 없이 깡그리 뭉쳐 노끈으로 묶어버렸다.

그 논문들은 쉽게 구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것은 내가 있는 학교가 아니라, 친구들을 통해 다른 대학의 도서관에서 복사해낸 것도 있었다. 논문을 찾는 것도 일이었다. 도서관 로비에 도열해 있는 카드박스를 뒤적이면서 참고논문을 찾는 것이 공부의 첫걸음이었다. 카드박스를 뒤적이는 것도 어려웠다. 그 많은 박스 어디에 내가 찾는 연구논문이 있는 줄 안단 말인가. 또 대학 도서관 참고열람실에 모든 논문집이 다 있는 것도 아니었다. 희한하게도 내가 찾는 논문집만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논문이 실려 있는 논문집을 찾았다 해도 그것을 손에 넣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복사기가 도입된 것이 1970년대 후반이었으니 그래도 나는 그 혜택을 보았다 하겠지만, 그전에는 어떻게 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영인본 출판사에서는 그런 논문집에서 필요한 논문만을 모아서 따로 책을 찍어 팔기도 하였다.

대학에 자리를 잡고는 각 학회에서 보내오는 논문집을 모아두었다. 연구실 한쪽 서가에 논문집별로 나란히 꽂아두고 필요하면 꺼내 보곤 했다. 하지만 4년 전 이 논문들 역시 모두 버렸다. 워낙 빨리 불어나므로 감당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왜 논문집들이 이렇게 늘어났는가? 약 10년 전부터 대학에 ‘경쟁력 강화’ ‘무한경쟁’ 등등 ‘경쟁’이란 말이 화두가 되면서부터였다. 교수들에게 논문을 증산하라고 강요했고 논문의 편수로 교수를 평가했다. 논문 생산량이 많으면 높은 등급을 받고 인센티브를 더 받을 수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학술지가 갑자기 두꺼워졌다. 1년에 한 번 내던 학술지를 두 번 내기 시작했고, 이제는 서너 번씩 낸다. ‘놀멍쉬멍’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연구열을 불태우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쨌거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열심히들 논문을 쓴다. 그게 논문집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유다.




논문집이 늘어나는 것만큼 논문집을 소중하게 여기는가 하면 결코 아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적고 학회는 늘어나고 또 논문집도 늘어나니, 거기에 실리는 논문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논문의 편수로 모든 것을 평가하니 견실하게 공부하는 분위기는 사라지고 어설픈 논문을 삼류 논문집에 여러 편 싣고 높은 평가를 받아 자리를 꿰차는 경우도 허다하다. 도무지 옥석을 가릴 수가 없다. 논문의 편수로 연구 업적을 평가할 수 없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문제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책임 있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나서서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나가면 학문은 자연스레 멸종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자연히 논문집도 예전처럼 소중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논문을 볼 수 있다. 글을 쓰다가 참고해야 할 논문이 있으면 학교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해당 논문을 검색하고 불러와 작업하던 창에 띄울 수 있다. 최근의 논문이어서 전자파일 형태로 있는 것이라면, 유관한 부분을 복사해올 수도 있다. 물론 오래된 논문은 PDF 파일로 보아야 하겠지만. 그러니까 이제 논문을 굳이 종이로 출력해서 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종이책이 사라질지 사라지지 않을지 미지수지만, 종이 논문집의 용도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같은 대학의 경제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연구실을 옮겼다. 이전 연구실은 원래 강의실을 막아서 만든 것이라 천장이 높고 컸다. 하지만 새로 지은 건물의 연구실은 좁다. 깨끗하고 전망도 좋지만 좁은 연구실은 문제를 일으킨다. 책을 놓을 공간이 부족한 것이다. 그 친구가 내게 어느 날 희한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책을 쪼개어 스캔하는 것이다. 수백 권 스캔해봐야 얼마 안 된다. 외장 하드디스크에 담으면 그만이다. 그동안 모은 자료집이며 논문도 모두 집어넣는다. 또 어느 날 e메일로 광고가 날아들었는데 내 친구가 했던 그런 작업을 대신해주는 회사란다. 말하자면 얼마의 비용으로 책을 스캔해서 하드디스크에 담아주니 이용해달라는 것이었다. 약간은 우스웠다. 옛날 노교수님들의 연구실에 가면 사방이 오래된 책들이었고 군데군데 각종 문서며 자료들이 끼워져 있었다. 그것을 보고 무언가 거룩한 학문의 분위기를 느끼며 주눅이 들곤 했다.

앞으로 10년 뒤면 책이라고는 한 권도 없고, 그냥 컴퓨터만 달랑 한 대 있는 교수 연구실을 보지 않을까? 하지만 학문의 수준이 정말 높아져 있을까? 그게 더 의문스럽다!

강명관 |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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