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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은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이상한 사건’이다. 550명의 피해자와 15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아직까지
직접적 책임자는 가려지지 않았다. 지난해 살균제 제조·판매 회사들이 피해자 유족과 보상에 합의했지만 가해 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는 국가의 배상 책임이 없다는 법원 판결도 나왔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의 국가 책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어제 법원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는 독성 물질 규제를 하지 않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부와 법원은 이들의 좌절과 분노를 외면해선 안된다.
법원은 지난달 29일 피해자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된
유독성 화학물질은 기업의 자율적 안전관리 대상이므로 국가의 확인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판결 이유였다.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에 유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부족한데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은 정부의 화학물질 안전관리 미흡과 기업의 부도덕한 활동이 만든 비극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1994년 국내 회사가
개발한 가습기 살균제는 세정제 용도로 정부 허가를 받은 뒤 살균제로 사용됐다. 이러니 치명적 폐손상을 일으키는 독성물질이 포함된
살균제가 자유롭게 제조, 판매됐다. 더 큰 문제는 이를 관리감독할 아무런 법적 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안전성
검증 장치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도 책임을 물을 대상이 없게 된 것은 이런 연유다.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참사 3년, 살인 기업 규탄 및 피해자 추모 대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물론 법원의 판결은 존중돼야 한다. 정부의 행정에 법적 책임을 물을 만한 일탈이 없다는 판결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의 의문 제기는 일리가 있다. 가습기 살균제 생산 기업들은 이미 독성을 알고 있었고, 기업이 물질안전정보를
교환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실, 그리고 국가가 이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은 책임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들은 묻고 있다.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원인을 알았지만 7개월이 지난 후에야 해당 제품을 수거한 사실도 문제다. 법원은 또한 이번 판결이
헌법적 가치와 배치된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헌법은 국민의 생명 보호가 국가의 첫번째 의무임을 규정하고 있다. 상급법원
재판이 열린다면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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