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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검사 시절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박 후보자가 1987년 검찰의 축소·은폐 의혹이 제기됐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에 참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서울대생 박종철씨가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이 사건은 6·10 항쟁의 기폭제로 작용하며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중대 분기점이 되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관계기관대책회의’를 통해 조직적 은폐·조작을 시도했으나 언론·종교계 등의 노력으로 진상이 밝혀지면서 거센 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졌다. 오욕의 과거사를 상징하는 이 사건 수사를 대법관 후보자가 맡았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 보고서 등에 따르면, 1987년 당시 서울지검 수사팀은 고문 경찰관 2명에게서 “공범이 3명 더 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수사를 확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은 몇 달 지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이 사실을 폭로하자 재수사를 통해 고문 가담자들을 추가로 구속했다. 그나마 2차 수사에서도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을 무혐의 처분했다가 6·10 항쟁 이후인 1988년에야 기소했다. 박 후보자는 1·2차 수사에 모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수사팀의 말석이었던 그는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 외압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출처 : 경향DB)


대법관은 사법정의의 수호자이자 인권옹호의 마지막 보루이다. 다른 어떤 고위공직자보다 높은 도덕성과 품격을 갖춰야 하는 이유다. 사회적 갈등을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직무를 수행하려면 어떠한 흠결도 있어선 안된다. 설사 박 후보자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정권의 부도덕한 은폐 시도에 결과적으로 방조했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렵다. 더욱이 박 후보자는 사건 발생 이후 28년이 지나도록 공개적으로 사과나 반성을 한 적도 없다. 국회에 제출한 임명동의서에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 경력을 아예 누락했다고 한다.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면 굳이 빠뜨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박 후보자는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도리라고 본다.

박 후보자의 도덕성을 둘러싼 논란은 대법관 후보 인선 과정의 문제점을 다시 환기시킨다. 법원행정처장과 법무부 장관 등 현직 법조인들이 밀실에서 후보 추천을 좌지우지하다 보니 이처럼 심각한 흠결을 지닌 후보자가 임명 제청되는 것 아닌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관련 규정을 개선해 인선 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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