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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중심제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기록은 대통령기록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시도된 것은 극히 최근이다. 2007년 7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다. 노무현 정부는 공을 들여 대통령기록관리제도를 마련하고 의욕적으로 실천했다. 비록 늦었지만 선진적인 제도이자 시스템이었다. 다만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다음 대통령이 누구인지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하자마자 전 정권의 기록을 문제 삼았다. 국정의 연속성을 위해 업무에 참고할 자료를 하나도 남겨놓지 않았다고 불평하더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저 봉하마을로 이지원 시스템과 기록물 사본을 담은 하드디스크를 가져간 것을 국가기록물 불법 유출이라고 공격해 회수하는 소동을 벌였다. 국가기록원은 노 전 대통령 비서진 10명을, 뉴라이트전국연합과 국민의병단은 직접 노 전 대통령을 고발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뼈아픈 점은 봉인된 기록인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세 차례나 ‘깐’ 것이다. 기록 유출 사건과 쌀 직불금 논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파문 때 국회나 검찰이 해당 기록을 열람한 바 있다. 모두 지정기록물 제도의 근본 취지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바로 그 ‘정치적 이유’에서였다. 대통령기록관리제도의 참담한 실패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전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집필작업을 총괄한 김두우 전청와대 홍보수석이 3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이 전대통령 재임시절 비화를 공개한 집필 경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관리제도를 또다시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외교 사안 등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사안을 회고록에 담아 논란을 자초해서다. 이명박 정부는 지정기록물과 비밀기록을 구분하지 않은 듯하다. 지정기록은 다음 정부가 보지 말라는 것이고 비밀기록은 다음 정부가 참고하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 ‘빈 깡통’만 남겼다고 비판했던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가 비밀기록을 9800여건이나 남긴 데 비해 단 한 건도 남기지 않았다. 비밀기록을 모두 파기했거나 지정기록으로 이관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유출 혐의 또한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어쩌랴. 그걸 알려면 또 한번 지정기록물을 까는 ‘기록사화(記錄史禍)’를 치러야 할 것이니 참 고약한 노릇이다.
신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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