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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때마다 시민들은 실망한다. 그러나, 우연일 것이다. 주상복합아파트를 사서 곧 팔았던 것도, 분당 전원주택지를 장모가 산 것이나, 함께 부근 땅의 주인이 된 사람들의 대단한 면모도 우연이었으리. 총리 후보자 얘기다. 부근 개발계획은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소속 김윤기 건설교통부 장관이 짰고 그는 당시 자민련 원내총무였다는 ‘상황 설명’ 보도도 있으나, 우연이겠지.

우연은 어디까지가 우연일까? 사전은 우연(偶然)을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이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이라고 푼다. 인과(因果)관계는 원인과 결과의 인연(因緣)이다. 그 인연의 끈이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인과관계를 설명할 때 쓰이는 속담이다.

이완구 후보자의 이제까지의 해명 키워드는 ‘우연’이다. 지위로 얻은 ‘좋은’ 정보 없이, 시장에 나온 물건을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사고팔았다는 것, 우연의 일치라는 것이다.

박사학위논문 표절 논란도 여느 청문회와 비슷하지만 역시 우연이리라. 삼청교육대와 관련한 ‘어떤 업무’로 국보위 훈장을 받은 것은 어떤 인연의 우연이었을까.

철학이론을 정색하고 공부한 사람이 아닌 대부분의 상식인들에게, 우연이 필연(必然)의 짝으로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해 칸트와 헤겔 등을 거친 철학적 명제(命題)였다는 사실은 좀 뜬금없겠다. 그냥 우연히 생긴 일이 우연 아닌가? 어떤 책은 이렇게 해석한다.

“원인이 없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원인이 없다면 결과도 없다. 그러나 우연은 현실로 존재한다. 우연은 (우리가 아는) 어떤 인과의 법칙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빚어진 것이다…” “우연적인 것만을 분리해 우연이라 규정함은 불가능하다. …거기엔 일정한 방향으로 작용하는 필연적 법칙이 있다. 이 법칙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또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는 다른 우연적 요인들로…”(임석진 외 편저 <철학사전> 참고)

‘우연’이 품고 있는 필연(성)의 존재를 짐작하게 한다. 철학이 이 개념을 오래 궁리한 명분과 이유겠다. 좀 삐딱하게 ‘우연히 생기는 우연은 없다’고 풀어볼까? 굴뚝과 아궁이와 연기의 관계에 관한 좀 더 심각한 명상이 필요한가?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 집무실로 출근하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_ 연합뉴스


자빠져도 돈을 줍는다는 ‘샐리의 법칙’(긍정적 방향)이나 일마다 꼬인다는 ‘머피의 법칙’(부정적 방향)의 근거가 될 수도 있겠다. 한 외국 과학자는 ‘머피의 법칙’에 관한 확률분석 이론을 준비 중이라 하니 이 우연과 관련한 행운이나 징크스도 곧 조절 가능한 현상이 될까?

눈물바람으로 벌인 아들 병역문제 대처는 다른 문제를 덮기 위한 성동격서(聲東擊西)의 교란책이었을까? ‘해명됐다’고 스스로 해명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사회지도층 인사’나 그 아들 중에 군대도 못 갈 신체 이상자나 허약자가 많은 것은 또 어떤 우연일까? 나라가 걱정일세.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은 ‘일어날 일은 꼭 일어나는 법’이라고 ‘머피의 법칙’에 새 뜻을 매겼다. 우연의 탈을 써도 그 효과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풀이도 가능하겠다. 어떤 좋은 연모나 명분이 정직함을 당할까?

사족(蛇足), ‘우연’은 일본에서 건너온 말이다. 1895년 유길준이 <서유견문>에서 처음 이 말을 썼다고 한다. 서양철학의 개념에 일본이 붙인 한자 이름이다. 중국도 이 말을 그대로 쓴다.


강상헌 |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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