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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고, 헌법 정신에 대한 배반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검찰 수사팀의 일원이었던 인물이 기어코 인권의 최후 보루인 대법관에 앉았다. 새누리당은 어제 정의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동원, 야당이 불참한 가운에 임명동의안을 단독 표결 처리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축소에 연루된 박 후보자가 정상의 절차마저 거치지 않고 ‘반쪽 대법관’에 오른 셈이다.

‘박종철 사건’은 민주화를 요구한 젊은이를 고문해 죽인 국가권력의 야만적 폭력이다. 이 사건에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이 대법관에 오른다는 건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기는 많은 국민들은 물론 법원 내부에서마저 반대 목소리가 높았던 이유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힘을 앞세워 밀어붙이기로 일관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대책 없이 시간만 끌다 ‘박상옥 대법관’ 탄생을 방조했다.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축소하는 데 협력 순응한 검사가 6월항쟁으로 탄생한 민주헌법하의 대법관이 되는 절대 안될 일”(서울중앙지법 박노수 판사)이 현실로 벌어지는 기막힌 상황을 목도하게 됐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박 후보자는 그간 재판기록과 관계자 증언을 통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은폐에 관여된 증거와 구체적 정황이 드러났다. 은폐·축소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더라도 방관하거나 순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법관으로서 자격 미달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박 후보자가 최소한의 반성과 자책의 모습도 보이지 않은 채 무책임한 변명으로 일관해온 점이다. 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에 대해 “부끄럽지 않다”거나 “지시에 따라 했을 뿐이다”라고 강변했다. 이토록 인권 감수성과 민주주의 인식이 결핍된 인물이 우리 사회 최후의 양심과 정의의 상징이어야 할 대법관 후보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불행이다.

박상옥 대법관 인준 강행은 인권과 민주주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할 사법정의를 허무는 일이다. 박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 치사’를 묵인 내지 방조한 것처럼 국회가 사법 신뢰를 붕괴시키는 방조자가 된 것이다. 애초 박 후보자 문제는 독재의 폭압에 맞서 민주주의를 일궈낸 우리 사회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한국 민주화의 분수령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담당 검사로 축소·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박 후보자가 대법관에 오른 것은 그래서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그를 대법관 후보로 제청한 양승태 대법원장, 힘으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킨 새누리당이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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