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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은 미국 유학 중 사고로 숨진 이진아 학생 가족의 기부로 세워졌다. 책을 좋아하던 딸을 위해 도서관을 지어 이름 석자라도 남겨주려는 소박한 부정이 깃든 도서관이다. 올해 설립 10주년을 맞는 이진아도서관은 공공도서관의 전범으로 자리를 잡으며 ‘가장 멋진 이름의 건물’이자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불리고 있다.

사람을 포함한 생물과 자연물, 인공물 등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리를 명명권(命名權)이라고 한다. 개인은 자기가 낳은 아이라든가 소유한 물건 등에 대한 명명권을 갖는 게 당연하다. 공공영역은 좀 다르다. 새로 발견된 천체나 원소의 명칭, 생물의 학명 등은 보통 발견자에게 명명권이 부여된다. 이를테면 폴로늄은 퀴리 부인이 발견해 모국 폴란드의 이름을 붙인 것이고, 목성과 충돌한 슈메이커-레비 9 혜성은 발견자인 슈메이커 부부와 데이비드 레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물론 여기에는 일정한 원칙과 관행, 승인이라는 절차가 따른다. 화성에는 지구의 지명을 딴 곳이 많은데, 낙동계곡이나 진주·나주분화구 등 한국식 이름도 있다.

서울 서대문구 ‘이진아기념도서관’의 전경. 23살이던 딸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버지가 딸의 이름이라도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재 50억원을 기증해 지은 건축물이다. (출처 : 경향DB)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보듯이 개인이나 기업이 공공시설에 기부하고 명명권을 얻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최근 기업에서 주로 문화·스포츠 시설이나 서비스의 명명권을 확보하는 사례가 두드러지고 있다. 프로야구 경기장을 비롯한 스포츠 시설에서 대학 내 건물, 강의실, 공연장,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기업 이름을 넣고 있다. 브랜드 홍보와 이미지 제고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기대해서일 것이다. 공공영역으로서도 부족한 재원을 채워주는 셈이니 말하자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고 할 만하다.

오는 6월 완공 예정인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명명권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현대산업개발이 300여억원을 들여 미술관을 지어 수원시에 기부채납하면서 명명권을 받아냈지만 수원 시민단체와 예술계는 특정 브랜드명이 들어가면 예술의 공공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진아도서관의 성공 비결 가운데 하나가 정작 거기에 ‘이진아’는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파크미술관에 ‘아이파크’가 없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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