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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추진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은 2015년 대법원이 허위 증빙서류를 꾸며 일선 법원의 예산 수억원을 빼돌린 뒤 유용한 단서를 잡고 수사 중이라고 4일 밝혔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이 돈을 상고법원 추진에 나선 고위 법관들에게 대외활동비·격려금 등의 명목으로 지급했다고 한다. 비자금 조성을 엄단해야 할 대법원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법원이 범죄자들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범죄의 기술을 익힌 것인가. ‘양승태 사법농단’의 끝은 도대체 어디인가.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9월5일 (출처:경향신문DB)

법원의 행태는 건설회사 등의 비자금 조성 양태와 다를 게 없다. 2015년 당시 행정처는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를 현금으로 인출한 뒤 비밀리에 인편으로 건네받아 행정처 예산담당관실 금고에 보관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 재무담당자들이 한 번에 얼마 이상 지출하면 안되기 때문에, 소액으로 나눠 뽑아 대법원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는 2015년 처음으로 책정됐다. 검찰은 행정처가 애초부터 비자금 조성을 목적으로 신규 예산을 편성한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양승태 사법농단을 둘러싼 의혹은 양파 껍질 까지듯 연일 보태지고 있다. 당초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서 출발했다가 재판거래 의혹으로 비화했고, 이제는 국고손실 혐의까지 포착됐다. 과거 공공 부문에서 수많은 횡령 범죄가 있었지만, 법원이 조직적으로 예산을 횡령한 의혹이 불거진 것은 처음이다. 당시 대법원 예산 담당자는 검찰에서 “윗선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사안의 엄중함에 비춰볼 때, 그가 언급한 ‘윗선’이 행정처 차장 수준일 리는 만무하다. 당시 행정처장(박병대)과 대법원장(양승태)이 지시했거나 최소한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행정처장은 물론 예산을 지급받은 법관도 모두 불러 사용처를 조사해야 한다. 법원 예산이 법관들의 호주머니를 거쳐 어디로 흘러갔는지 밝혀내야 한다.

사법농단 사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견제가 절실함을 웅변한다. 검찰의 수사와 별개로 법원의 개혁작업도 진행돼야 한다. 현 행정처는 지난 3일 사법농단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개선 작업 경과를 공개했으나, 내부에만 맡겨놓을 일이 아니다. 시민이 참여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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