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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대학교수가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면 순식간에 세상에 공유되고 많은 이들이 지탄한다. 예전에는 태연히 했던 말들이 문제가 되니 교육자의 자기검열은 심해졌다. 진작 그랬으면 세상은 지금보다 평등했을 것이다. 그래도 차별이 조금씩이라도 줄어들 거라는 희망은 보인다.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것에 비해 ‘학력주의’에 기반하여 사람을 차별하는 모습은 그대로다. 더 노골적이다. 교수는 과제가 어렵다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정도 수준을 어렵다고 투덜거리면 나중에 길바닥에서 박스 깔고 자야 해요.” 교수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말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표정이다. 학생들도 키득키득 웃는다. 교수의 언행을 규탄하는 대자보 같은 건 어디에도 붙지 않는다. 말 그대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학력차별의 문법은 오랫동안 성차별이 유지되었던 상황과 다르지 않다. 모든 비열한 차별처럼 ‘그럴 만한 객관적 이유’가 탄탄한 토대가 된다. 공부를 못했으니 사람답게 살지 못해도 별 수 없다는 논리가 가능한 이유다. 성별 임금격차 등의 문제를 지적할 때, ‘객관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능력이 부족하다면서 또박또박 따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당.정.청 전원회의' 시작에 앞서 자신의 후임으로 지명된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인사하고 있다. 오찬을 겸한 이 회의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부부처 장관,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 190여명이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존엄성이 무너진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풍토에서 조롱은 부지기수다. 이런 배경은 사람의 정당한 주장을 박스나 깔고 자야 할 사람의 (집에서 살림이나 할 여자의) 필요 이상의 요구라고 해석하고 무시하는 여론을 만든다. 이들은 ‘공정’이라는 프레임을 자신의 편에 세워 반대쪽을 혐오한다. 학교 급식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논의에 한 정치인이 “그냥 동네 아줌마인데 왜 정규직을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가 논란이 되었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무임승차, 도둑놈 심보로 이해한다.

‘그럴 만한 이유’로 한쪽이 한쪽을 우습게 여기고, 한쪽만의 언어가 세상을 지배하면 반대쪽은 체념이든 순응이든 적응만이 살 길이다. 심각한 것은 성차별이 50%가 지배하는 세상에 50%가 ‘체념’하는 경우였다면, 학력차별은 10%도 되지 않은 자들만이 이득을 보는 논리에 모두가 적극적으로 ‘순응’하는 사실이다. 이곳에서 빈곤의 이야기는 ‘극복 수기’라는 예외적인 경우로만 대중의 관심을 받아 사회구조의 모순을 은폐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지금껏 ‘대한민국 교육’이 어떤 목표를 가졌는지를 생각하면 놀랄 일은 아니다. 문제에 대한 답이 틀렸다고 사람을 때렸고 석차에 따라 사람을 우열로 구분했다. 이를 바탕으로 학교 내 독서실, 기숙사 등을 사용하는 권리를 차등화시키는 건 지금도 그대로다. 그 끝에는 지금 노력에 따라 치킨을 시킬지 배달할지가 결정된다는 비열한 다짐만이 떠돈다. 노동을 자기 노력의 결과로만 이해하는 곳에서 ‘경쟁교육’은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다. 나만 수렁에 빠지지 않겠다는 곳에서 구멍은 깊어지고 넓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 전체의 노동안정성이 무너지니 학교라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기간제’, ‘계약직’이라는 딱지로 분류된다.

교육부 장관에 유은혜 의원이 내정되니 반대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유은혜 의원이 학력주의 차별을 줄이기 위해 시도했던 정책들이 다시 논란이다. 반대야 자유다만 그 이유가 비열하다. 기간제 교사는 남들 공부할 때 편하게 돈 벌려는 사람이고 계약직 직원들은 죄다 꼼수로 들어갔으니 이들이 ‘안정적으로’ 노동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은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자’를 마음껏 무시한 역사가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지를 증명한다. 시험의 공정성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일 수 없기에 그 결과로 타인을 차별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 당연한 것을 가르치지 않았던 교육시스템에 길들여진 항의는 자신을 논리적이라 생각할수록 사람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할 뿐이다. 논리적인 혐오라니 끔찍하다.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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