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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들은 내부적으로 치열한 토론이 오갈지라도 이견 자체를 밖으로 잘 표출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관료들 간 갈등이 뉴스의 중심에 서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다. 하지만 문 정부에서는 예외적인 현상이 빚어지면서 한국경제의 한 리스크 요인이 돼 왔다. ‘늘공’(늘 공무원)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어공’(어쩌다 공무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얘기다.

앞서 청와대 개편에서 자리를 지킨 장 실장에 이어 8·30 개각에서 김 부총리가 유임되면서 둘의 갈등은 일단 봉합된 모양새다. 그럼에도 충돌지점을 찾아내고 교정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 두 사람을 ‘김&장 갈등’의 프레임에 가둬놓으려는 세력이 엄존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연수원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회동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사실 문 정부 출범 초부터 두 사람 간 갈등은 예고된 측면이 있었다. 김 부총리는 지난해 취임사에서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세 개의 축이 필요하다며 사람중심투자, 공정경제, 혁신성장을 언급했다. J노믹스의 3대 축 가운데 혁신성장과 공정경제는 포함시켰지만 소득주도성장 대신 사람중심투자를 내세웠다. 필요하다면 논쟁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에게 주문했다. 소득주도성장이 가져올 경제적 논란을 예감하고 좀 더 포괄적 개념인 사람중심투자를 꺼낸 건 아니었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최저임금과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싸고 두 사람의 발언은 온도차를 드러냈고, 경제주체들이 불안해하는 이유가 됐다. 소득분배와 고용 악화를 계기로 최근 김 부총리는 소득주도성장 수정·보완을 암시했고 장 실장은 소득주도성장을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으니 갈등이 더 커진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당초 김 부총리는 개혁의 충실한 집행자 역할을 할 것이란 시각이 많았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내건 문 정부의 개혁 밑그림을 장 실장이 짜고 김 부총리는 집행자로 역할이 나뉠 것이란 분석이었다. 김 부총리가 현 정부와 특별한 연줄이 없었다는 점도 이런 분석의 근거였다. 실제 김 부총리를 건너뛰고 여당과 청와대 중심으로 세제개편안 등 주요 경제정책이 결정되면서 김동연 패싱 논란이 불거졌다. 아마 이는 김 부총리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을 가능성이 높다.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의 갈등 이면에는 김 부총리의 사고와 스타일을 파악하고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장 실장의 책임도 있다고 보여진다. 한편으로는 장 실장이 김 부총리의 개혁성과 추진력에 만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문 정부의 경제정책에 우호적인 진보진영에서는 김 부총리가 소득주도성장 방어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최저임금 인상만 아니면 경제가 풀릴 것처럼 야당이 말하는데, 경제부처가 부화뇌동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다”고 지적한 게 대표적이다.

둘의 갈등을 증폭시킨 외부세력의 책임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보수세력은 ‘소득분배·고용 악화→최저임금 탓→최저임금 인상을 주요 정책으로 하는 소득주도성장 흔들기→장하성과 김동연 갈라치기→장하성 교체 요구’로 끊임없이 공격을 가했다. 김 부총리가 자유한국당의 비호를 받고 자유시장경제의 수호자인 것처럼 비춰지고 있는 점은 아이러니다. 소득주도성장이 반기업정책의 상징처럼 돼버린 것도 두 사람의 갈등이 낳은 안타까운 장면이다.

둘의 갈등이 실제보다 부풀려져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예상외로 갈등의 골이 더 깊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관가에서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게 금이 가 있다는 말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고, 시장에서도 상당부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서민, 영세상인, 비정규직, 청년들이 많다.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는 걸 막고 포용적 사회로 가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둘이 빛 샐 틈 없는 공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찰떡 공조를 이뤄내길 기대해 본다. 이를 위해 김 부총리는 개혁성향을 좀 더 강화하고, 장 실장은 보다 실용적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김 부총리는 지난 1월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의 저서 <위대한 탈출>을 읽고 왔다며 한국경제에서 양극화 해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비서진이 써준 원고를 물리치고 본인이 직접 준비했다고 했다. 이런 그가 소득주도성장의 강력한 집행자로 나선들 이상할 게 없다. 현재 소득주도성장을 어려움에 처한 한국경제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참 나쁜 프레임이 횡행하고 있다.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장 실장의 역할이 누구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개혁의 굳은 심지를 유지하되 지혜롭고 유연하게 대처하길 바란다.

<오관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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