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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법관대표회의가 19일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현직 판사들에 대해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관해 정부 관계자와 재판진행 방향을 논의하고, 일선 재판부에 특정한 내용과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의견을 제시한 행위가 중대한 헌법 위반행위라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는 선언문을 의결했다. 법원 내부의 자각과 반성은 늦게나마 다행스럽다. 법관대표회의는 각급 법원의 대표 판사 119명으로 구성된 일선 법관들의 공식 대표기구이다. 최근 대구지법 안동지원 판사 6명이 “지금 시점에서 판사들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행동”이라고 적시한 탄핵촉구안에 다수 법관들이 동의한 것이다.

탄핵으로 헌법 위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일선 법관들의 목소리는 시민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이들의 양심과 용기, 소신을 높이 평가한다. 탄핵은 시민의 이름으로 단죄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대통령 탄핵과 같이 국회 가결에 이어 헌법재판소가 최종 결론을 내려야 하는 법관 탄핵은 헌정사상 유례가 없다. 일본에서는 의회에 설치된 탄핵재판소가 금품 수수나 아동 성매매 등의 비위를 저지른 법관을 6차례 탄핵한 바 있다고 한다. 법관의 신분을 보장한 이유는 법치주의와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로서 그 역할을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최고조에 이른 상태다.

 최근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을 보면 ‘양승태 대법원’의 부당한 지시를 묵인하거나 용인한 전·현직 법관만 63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재판을 거래 대상으로 삼고 사법정의를 무너뜨렸다. 법원이 ‘국정운영을 뒷받침한다’는 발상 자체가 행정과 사법을 분리하는 헌법정신에 위배된 행위란 건 두말할 나위 없다. 법관이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결하지 않는다면 신분 보장은 특혜일 뿐 의미가 없다. 이날 검찰에 소환된 박병대 전 대법관은 “법관으로 평생 봉직하는 동안 최선을 다했고, 법원행정처장으로 있는 동안에도 사심 없이 일했다”고 했다. 그는 임종헌 전 차장 공소장에 30차례나 공범으로 적시된 사법농단 핵심 피의자 중 한 명이다. 한데도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한통속이었던 다른 판사들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고위법관들이 사법신뢰를 무너뜨린 책임은 무겁다. 이들을 그냥 두고서는 사법적폐 청산은 요원하다. 사법부를 향한 불신과 냉소도 더욱 커질 것이다.

검찰 수사에 이어 사법농단 연루 법관이 국회의 탄핵소추까지 받게 된 현 상황은 누구를 탓할 것 없이 자초한 업보다. 그동안 법원은 ‘제 식구 감싸기’로 사법부가 거듭나길 바라는 시민의 기대마저 저버렸다. 늦었지만 일선 법관들이 스스로 환부를 도려내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국회는 법관들의 충정을 이어받아 신속히 탄핵절차를 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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