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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의 휴대전화 감청을 매우 용이하게 하는 관련 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이 대표발의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지난 21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에 상정됐다. 개정안은 통신업체에 감청장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하고, 이를 어기면 1년에 20억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한마디로 헌법의 기본권과 ‘사생활 보호’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악법이다. 각 통신사에 감청장비가 설치되면 합법을 가장한 불법 도·감청이 광범위하게 자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에서도 법원의 영장을 받아 휴대전화 등 모든 통신의 감청이 가능하다. 하지만 영장을 받아도 휴대전화 감청설비가 없어 중대범죄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게 정부·여당의 주장이다. 설령 그 주장의 타당성을 일부 인정하더라도, 불법 도·감청을 원천 차단할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감청장비 설치’는 국민 기본권을 유린하는 재앙이 될 소지가 크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국정원 등 수사기관이 전 국민을 상대로 언제든 휴대전화를 엿들을 수 있게 된다. 법원이 영장 심사를 한다고 해도, 법이 허용하는 감청 대상이 워낙 많은 데다 특정인 사찰을 목적으로 ‘끼워넣기 감청’을 영장에 포함시켜도 막을 방법이 없다.

사이버 사찰 금지법을 요구하는 1만인 선언을 준비 중인 사이버사찰감시행동이 내건 포스터. (출처 : 경향DB)


대규모 ‘사이버 망명’ 사태를 야기한 ‘카톡 사찰’에서 보듯, 지금도 갖은 도·감청과 사찰이 수사기관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 자체 휴대전화 감청장비를 보유했던 국정원이 이를 폐기한 것도 다름아닌 불법 도·감청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부는 감청설비를 의무화할 통신사업자의 범위는 “시행령에서 정하겠다”고 한다. 시행령을 통해 네이버·다음카카오 등 인터넷기업의 통신서비스까지 감청설비 의무화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국민의 사생활, 통신비밀이 ‘빅 브러더’ 국정원의 손아귀에 쥐어지는 끔찍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개정안은 지난 17, 18대 국회에서 발의됐다가 폐기됐던 법안과 유사하다. 당시에도 기본권과 사생활 침해 논란이 거세게 일어 폐기됐다. 정치개입과 간첩증거 조작, ‘카톡 사찰’ 등 수사기관의 헌정농단과 기본권 침해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시적 휴대전화 감청’을 허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 된다. 지금은 ‘감청수사 강화’가 아니라 국정원과 검찰 등의 ‘제자리 찾기’가 먼저다. 새누리당은 감청장비 설치 의무화를 다룬 통비법 개정안을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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