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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표절 논란’이 검찰 수사로 비화할 태세다. 서울중앙지검은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이 업무방해 및 사기 혐의로 신경숙씨를 고발한 사건을 지식재산권·문화 관련 전담부서인 형사6부에 배당했다고 한다. 앞서 현 원장은 신씨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해 출판사 창비를 속이고 인세를 부당하게 받은 혐의가 있다며 고발했다. 우리는 문학의 문제를 문단에서 심도 있게 논의하기도 전에 법적 공방으로 끌고 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문학의 도덕성과 문학권력 등 사안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리고, 형사처벌 여부와 같은 비본질적 부분만 부각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씨의 표절 의혹을 처음 제기한 소설가 이응준씨는 “문학의 일은 문학의 일로 다뤄져야 한다”며 검찰 수사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씨는 “누군가 어떤 개선을 바라고 던진 메시지가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면,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고 원망과 증오만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 이씨의 의혹 제기 이후 문단 내부에서 표절 문제를 둘러싼 공론화 작업이 시작된 터다.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가 23일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기로 한 것도 그 징후다. 검찰이 수사에 본격 착수할 경우 문단 내부의 생산적 토론과 자정 움직임은 차단되고 모든 관심이 수사로 수렴될 게 분명하다. 이는 한국 문학인은 물론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까지 모독하는 일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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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신경숙이 1996년 발표한 단편 '전설'의 한 부분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흡사하다는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_ 연합뉴스


김진태 검찰총장은 평검사 때인 1992년 소설 <즐거운 사라>를 쓴 마광수 연세대 교수를 음란문서 제조·반포 혐의로 구속 기소한 바 있다. 당시 창작물의 외설 여부를 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 설사 외설이라 해도 작가를 구속한 조치가 타당한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마 교수를 법정에 세움으로써 한국 문학과 한국 사회가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갔던가. 검찰 총수가 된 김 총장이 이번에는 신중하고 현명한 선택을 하기 바란다. 신씨 본인의 진솔한 해명과 사과가 필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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