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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많은 것을 집어삼켜 버렸다. 그 뒤에 숨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이들이 많으리라. 그로 인해 크게 주목을 끌지 못한 또 다른 이슈가 있으니 바로 강한 야당에 대한 염원을 대변하는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의 출범이다.

박근혜 정권 등장 이후 지난 2년 반은 여당 독주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이는 야당의 지리멸렬과 헛발질이 그 독주를 가능케 해주었고, 이는 눈살 찌푸리게 하는 다양한 반칙의 장으로 이어졌다. 보수나 진보를 막론하고 그 독주를 두려워하는 양식 있는 이들은 모두 이를 견제할 강한 야당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다.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 혹은 좌파와 우파의 구분짓기는 어려운 일이다. 보수 우익을 자처하는 주류들이 대체로 세계사적인 보편적 기준으로는 극우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삼아 실상 중간에서도 우측에 자리할 새정치연합으로 대표되는 세력을 진보 혹은 좌파로 매도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탈이념의 시대가 요원한 것이라면, 한국에서 진정한 좌파의 성공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이제 이 불합리한 구도를 한국적 현실로 인정해야 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부산물인 좌익 혹은 종북 콤플렉스 때문에 좌로 분류되길 주저하는 중도 자유주의자들이 ‘한국적 좌파’라는 독배 수용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지난 세기 민주화에 공헌한 그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지만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운동식 접근 방법 역시 안타까운 부분이다. 2010년 초 한 미국 대학의 나름 진보 성향 교포 교수로부터 들은 한국에서의 ‘민주화’ 혹은 ‘민주주의’에 대한 길거리 구호가 이제는 “촌스럽게 느껴진다”는 얘기에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다.

당시 많은 이들이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물론 그 진단의 현실성을 십분 이해하고 있다. 먹고살기 바쁜 대중들에게 그러한 구호들은 더 이상 관심 대상이 아니다. 다양한 길거리 시위 현장을 주도하는 운동 세력의 노후화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이제 운동시대의 종말을 논하기에도 이미 늦어 버린 감이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엘리트 정치에서 그 해답의 일단을 찾아보자.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회 구성 직전 조국 서울대 교수가 유력한 위원장 후보로 거론된 바 있다. 그와 일면식도 없지만 그의 화려한 이력과 멋진 외모, 따뜻한 인품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언급이 필요없을 것이다. 대다수의 이른바 폴리페서들이 연구에 소홀한 것과 달리 조 교수는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지 인용지수에서 법학 분야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자신의 일에 대한 성실성까지 겸비하고 있다. 스스로 강남좌파를 자처하는 그가 ‘한국적 좌파’ 확장의 기대주임은 분명하다.

한국 사회에서 강남은 반감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기도 한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21세기 한국의 보통 성인들은 근검절약을 중시하지만 그것을 더 이상 금과옥조로 삼지는 않는다. 대부분 자신의 자녀들이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강남으로 상징되는 부촌에 살게 되길 희망한다.

실제로 강남 등 부촌에 터를 잡고 사회경제적 지위를 누리거나 혹은 그러한 삶을 좇는 이들 중에서도 약자의 아픔을 공유하고 사회 부조리를 바로잡고자 하는 제2, 제3의 조국 교수가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한국적 좌파’의 새로운 희망으로 조국 교수와 같은 이른바 강남좌파의 외연 확대를 꿈꾸는 건 아직도 시기상조일까. 한국 사회에 만연한 정의 불감증에 아파하는 무당파 중간 집단을 그 대열로 합류시키길 기대하기는 무리일까.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10일 당 쇄신안을 마련할 혁신위원을 발표하기 위해 국회 대표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당 외부 인사로 조국 서울대 교수, 최태욱 한림대 교수, 임미애 경북 북부권 규제개혁협의회 위원장, 정채웅 변호사, 전춘숙 전 '한국여성의 전화' 대표를 선발하고 당내 인사로는 우원식 의원과 박우섭 인천남구청장, 이동학 당 청년위원회 부위원장, 이주환 당 당무혁신국 차장, 최인호 부산 사하갑 지역위원장 등 5명이 혁신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출처 : 경향DB)


수년 전 강준만 교수의 문제 제기로 촉발된 강남좌파 논쟁의 냉소성을 넘어서 이제 이를 최소한 진지한 공론의 장으로 재등장시킬 필요성을 절감한다. 미국 유학파 교수로 강남 언저리에 살고 있는 필자부터 기꺼이 ‘한국적 좌파’의 독배를 마실 준비가 되어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개혁대상이 되어버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반발로 조국 교수는 혁신위원회의 위원들 중 한 명으로 위촉되었다. 그렇지만 위원장을 맡은 김상곤 전 교육감 역시 따지고 보면 강남좌파의 원조 격 아니던가. 이들이 첫 회의를 갖자마자 예상했던 대로 잡음이 일어 혁신위원회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이다. 한국 야당의 미래를 짊어진 이들이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천천히 죽어가는 늙은 정당”을 기사회생시키길 기대한다.


심재훈 | 단국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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