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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지방선거 모 지역 비례대표에 출마한 지인의 이력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소수자들의 작은합창모임 노래선생님.’ 몇 줄의 짧은 이력은 뭇사람들이 존경할 만한 궤적이라기엔 소박하지만, 구체적이다. 내가 투표할 지역의 공보물을 펼쳐본다. 다수의 후보가 질세라 길게 나열된 학력과 이력으로 신뢰를 홍보한다. 유명 정치인이나 공직자와의 연관성을 부각하여 ‘○○○과/와 함께’라고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한다. 이런 리스트가 신뢰를 줄 만한 설명 방식이라니 한숨이 나온다.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될지 구체성을 띠는 공보물을 찾기가 어렵다. 선거운동 기간 수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해도, 정작 다양한 존재들의 구체적 삶을 만나지는 못한 탓이리라.
발달장애인 참정권 운동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한 발달장애여성은 인상적인 공약에 대해 “페미니즘이랑 혐오, 차별, 성폭력 예방… 우리도 거기에 속하고 있기 때문에 좋다”고 말한다.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되는 것을 지켜보며, 대의 민주주의가 나의 존재와 수많은 소수자의 존재를 존중하지 않고 대표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새삼 절감했다. 내 존재를 대변하지 못하면서 유명인의 이름이나 경력으로 채워진 이들에겐 더 이상 투표하고 싶지 않다.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선거벽보에 사용된 사진. ⓒ김현성
7기 6·13 지방선거의 주요 관심사로 나는 ‘청소년 참정권, 시건방진 포스터, 발달장애인 참정권, 지방선거 혐오대응 전국네트워크’를 주저 없이 꼽겠다. 비장애·남성·중산층 기득권이 전유했던 ‘정치’를 재구성하는 시간들로 기억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정치라는 공적 공간에서 수혜의 대상으로 호명됐던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주체로 등장할 때 준비되지 않은 사회는 불신과 혐오를 보였다. 이 불신이야말로 동료 시민으로 살아갈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게 하는 핵심이다. 어려서, 장애인이라, 여성이라, 학력이 어떠해서, 성소수자라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기준이야말로 차별이다.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의 포스터 훼손과 시건방지다는 논평은 주체적인 관점과 의견을 가진 여성에 대한 반감과 혐오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선거연령 하향 촉구 농성을 43일간 국회 앞에서 벌였지만 선거법 개정은 4월 국회에서 무산됐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 청소년이 선거권을 보장받진 못했지만, 운동주체들은 교복 입고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운동을 진행한다. 발달장애인 참정권 운동은 쉬운 선거 공보물과 후보자 얼굴이나 정당 로고가 들어간 쉬운 투표용지, 투표소 내 공적 조력자 배치를 요구한다.
발달장애인을 위해서 ‘쉽게’를 넘어 동료 시민으로 살아갈 준비가 필요하다는 요청이다. 지방선거 혐오대응 전국네트워크는 혐오표현 신고센터를 열고, 혐오 없는 선거 만들기 시민선언으로 혐오표현에 대응하고 있다. 공적 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에 공보물과 선거운동 과정에서 혐오표현 감시와 모니터링, 혐오 표현 규제 방안 검토, 공직선거에서 혐오 표현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 등 후보자 혐오발언 근절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머물러야 할 위치를 이탈해서 공적 공간에 진입하고 소란을 피우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가장 중요한 정치다. 6월13일 밤 개표방송에선 당선자들의 얼굴 일색이겠지만, 나는 그들이 대표하지 못하는 나와 수많은 또 다른 나를 떠올릴 것이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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