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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5월 7일자 지면기사 -

대법원 사법발전위원회가 ‘전관예우’ 실태조사 시행 여부를 두고 절반으로 갈렸다고 한다. 지난달 17일 열린 사법발전위원회 2차 회의의 회의록을 보면, 전관예우에 대한 국민 인식을 조사하는 데는 위원 모두 찬성한 반면, 전관예우 실태를 수치화하는 통계조사에는 10명 중 5명이 반대한 것으로 나온다. 반대한 위원들은 사법불신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는데, 답답할 따름이다. 사법불신이 가중되는 건 문제를 드러내는 대신 감추려고만 드는 불투명성 탓임을 모르는 모양이다.

9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법관대표회의가 상설기구화된 후 처음 열린 것이다. 이상훈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 취임사에서 “전관예우가 없다거나 사법불신에 대한 우려가 과장된 것이라고 외면할 게 아니라 여러 불신 요인들을 차단할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역대 대법원장 중 취임사에서 전관예우를 직접 언급한 것은 김 대법원장이 처음이다. 대다수 시민이 ‘유전무죄’의 배경에 전관예우가 도사리고 있다고 믿어왔지만, 그동안 사법부에선 전관예우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의 이 같은 의지에 따라 ‘사법제도 개혁 실무준비단’은 전관예우 근절을 4대 개혁과제에 포함시켰다. 사법발전위원회는 이들 개혁과제에 대한 각계 의견을 반영하는 개혁기구로 출범했다. 그런 사법발전위원회가 전관예우 근절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사실 ‘전관예우’라는 용어부터 틀렸다. 예우의 사전적 의미는 ‘예의를 지키어 정중하게 대우함’이다. 전관예우는 전직 법관들에게는 정중한 대우일지 몰라도, 법률소비자 입장에선 부당한 특혜성 거래다. 지난 3월 경향신문이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2017년 상고심 수임 사건을 전수조사했더니, 수임 사건 수가 2016년보다 6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와 하루라도 같이 근무한 대법관에겐 해당 사건 주심을 맡기지 않겠다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법원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고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대법원장이 전관예우 근절 의지를 공개 천명했는데도 악습을 뿌리 뽑지 못한다면 사법개혁은 요원하다. 사법발전위원회는 반드시 실태조사를 벌여 전관예우가 사법현실을 어떻게, 얼마나 왜곡시켜 왔는지 낱낱이 드러내야 한다. 물론 법원과 사법발전위원회에만 맡겨놓을 일은 아니다. 국회는 전관 변호사의 수임료를 공개하는 등의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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