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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조용필이 평양공연을 마치고 귀환한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는 새벽 4시인데도 20여명의 팬클럽 회원들이 전날 밤부터 플래카드와 선물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필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기다리는 40~50대 원조 오빠부대였다.

서울 지하철 7호선에는 엑소 멤버 시우민의 생일을 기념해 팬클럽의 의뢰로 8량 전체를 시우민 관련 게시물로 도배한 열차가 등장했다. 강남 삼성동 SM타운 코엑스아티움 지하도에는 아이돌 스타들의 팬클럽 광고판이 모든 영역을 점령했다. 엑소의 또 다른 멤버인 세훈은 생일축하 라디오 광고가 중국 팬클럽에 의해 만들어져 하루 2차례씩 12일 동안 방송되었다.

1960년대부터 해외 팝스타들의 한국 내한공연 때마다 열광하던 팬클럽은 1980년대 올림픽을 경유하면서 국내 특정 연예인을 집단적으로 지지하고 좋아하는 조직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1990년대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 ‘HOT’ ‘젝스키스’의 팬클럽은 전국적인 조직망에 체계적인 연락망까지 갖춘 기업형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2000년대 이후 다음웹툰과 네이버웹툰을 중심으로 어느 누구나 자신의 만화작품을 업로드시키면 누리꾼들의 조회수와 댓글의 충성도를 기반으로 정식연재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웹툰의 댓글부대는 연예인의 팬클럽처럼 조직화는 되지 않았으나 자신만의 독특한 지지의사와 철저한 작가비판, 작품에 대한 조언 등을 실시간으로 제안하며 신인 작가를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리는 주도적 역할을 장기간 챙기게 된다. 이렇게 지속적인 댓글을 주도해온 팬클럽은 항상 기능적으로 긍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가 된 인기 웹툰작가가 개인적인 이유로 휴재(매주 연재 형식으로 업로드하는 작품을 1주 이상 쉬는 경우)를 한다거나, 스토리의 완성도와 연출의 집중도가 현저하게 부족하다고 개인적으로 판단되면 가장 험악한 악플러로 변신하기도 한다. 양날의 검처럼 웹툰의 댓글은 인기 작가의 우울증 원인이 되기도 하고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다양한 SNS의 플랫폼에서 모든 의사표현과 상호커뮤니케이션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상화되는 현실에서 팬덤은 이제 점차 개인중심적인 사고체계에 더 집착하게 된다. 본인의 판단을 믿게 되고, 그 믿음의 연속선상에서 스타와 개인을 동일시하는 감정기복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러한 의사표현의 선도적 리더가 또 다른 충성도 높은 조직을 견인하게 되면 온라인상의 팬덤은 가상적인 네트워크상에서 종교적인 친밀감으로 조직화된다. 기존 가수와 배우 중심의 팬덤이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온라인과의 연계 속에서 장기적인 네트워크를 지켜왔다면, 현재 디지털 콘텐츠와 정치 네트워크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팬덤구조를 모듈식으로 진화시키며 각 조직의 치밀한 긴밀도를 완성해나간다. 그들만의 리그가 팬덤의 진화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결국 그러한 팬덤의 충성도가 변질되면 압력단체나 이익단체의 성격으로 흐르게 되고 자신들만의 정의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구현하는 좀비팬덤으로 점조직화될 수도 있음을 최근 이해하게 되었다.

브룩 실즈와 소피 마르소, 다이앤 레인의 브로마이드를 벽에 붙이던 소심했던 10대 팬덤은 이제 가수 이문세 노래를 듣고 추억을 호명하며, ‘소녀시대’와 ‘씨스타’의 해체에 서운해하고, 밥 잘 사주는 예쁜 배우 손예진의 팬클럽에 가입하는 것이 주책일까 고민하는 중년이 된 지금,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의 등불을 마음속에 나도 켜보는 그런 시간이 소중하게 생각된다. 팬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마음의 진솔함이 시작이고 완성이다. 대통령이 잘하면 잘한다고 인정해주는 것도 팬덤의 시작이다. 그런 팬덤을 보고 싶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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