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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 이거 읽고 나서 고기를 안 먹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불편할 것 같은데요. 묘사가 정말 생생해요.” “그래? 나 또 고기 못 먹는 거 아니야. 아예 읽지 말아야겠다(웃음).”

최근 토요일자 ‘책과 삶’ 지면에 <고기로 태어나서>가 소개됐다. 저자가 닭, 돼지, 개 농장에서 실제 노동하며 겪은 일들을 그린 책이다. 고기 생산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아파트 거실에서 반려닭 ‘또래오래’를 키워본 나는 그 일로 2년간 닭을 먹지 않은 경험이 있다. 지난해 영화 <옥자>를 본 뒤에는 8개월가량 육식을 하지 않았다.

책을 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혀끝의 유혹은 물론 절식에 따른 불편함을 또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치맥 자리에서 썬 양배추와 케첩으로 허기를 채우고 싶지 않았다. 차돌박이 구이를 노려보며 양념 부추에만 젓가락을 갖다대고 싶지도 않았다. 육식을 하지 않기로 했을 땐, 죄의식 등으로 아예 입맛이 당기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윤리나 성찰은 흐려지고 50여년간 다져진 육식의 본능이 꿈틀대 힘들었다.

닭, 돼지 등을 멀리하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육식 위주로 돌아가는지도 깨달았다. 정동에 자리한 회사 밖에 나와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음식점은 돈가스, 곰탕, 순댓국 가게들이다. 간담회나 저녁 모임에도 미리 주문된 메뉴에는 언제나 몇 점의 고기가 올라왔다. 대체 음식을 요구할 땐 ‘성가신 존재’가 되기 십상이었다. 눈이 예쁜 송아지와 어미소의 정다운 모습을 강조한 광고 사진에는 건강식 한우를 강조한 카피가 쓰여 있는 식이다. 이전엔 그 폭력성을 의식하지 못했다. 흡연자들이 금연에 성공한 뒤 자랑스러워하듯 언젠가 완전한 육식포기를 선언하며 ‘육식 보고서’라는 칼럼을 쓰려고 했지만 결국 못하게 됐음을 고백한다. 육식은 죄가 없다. <고기로 태어나서>가 말하듯 고기를 만드는 폭력적 시스템, 엄연히 생명인 것을 생명 아닌 것으로만 철저히 소비하는 의식이 문제다.

요즘 낚시 예능 프로그램들이 점점 불편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 <낚시본부> 등 케이블 채널에서는 물론 지상파 예능에서도 낚시는 중요 아이템이 됐다. 이들의 인기는 실제 낚시인구와 낚시용품 판매량 증가로도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 낚시용품 판매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14% 증가했다. 지난해 총 판매량은 2013년에 비해 5배 증가했다고 한다. 낚시광으로 소문난 연예인들은 때아닌 전성기를 맞고 있다. 낚시인기는 가까운 데서도 체감됐다. 몇 달 전 남편이 회사 사람들과 인천 덕적도로 낚시를 다녀왔다. 항구는 낚싯배들로 혼잡했고 직장, 친목모임, 가족 단위 사람들로 북적여 인기를 실감했다고 한다.

문제는 잡아온 물고기들이었다. 다 늦은 밤, 들고온 작은 박스에는 광어와 노래미, 이름을 알 수 없는 물고기 등 3마리가 담겨 있었다. 처음엔 귀한 자연산이라며 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냉장고 속에 불순한 것이 있는 것처럼 마음이 무겁고 불편해졌다. 평소 마트에서 매끈하게 상품화된 물고기에 익숙한 탓이었다. 비늘을 벗기고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대가리를 치고 내장을 파내고 몸통을 토막 내며 붉은 피를 씻어내야 했다. 남편이 못한다고 하는 바람에 선글라스와 마스크, 고무장갑을 끼고 겨우 했다. 온몸이 미끄덩하고 경직돼 있는 도마 위 광어와 노래미, 이름 모를 물고기…. 그날 오후 1시까지만 해도 서해바다에서 헤엄쳤던 생명력이 그대로 전해졌다. 죽어 있는 것이 전하는 생명력은 오히려 살아 있는 것보다 더 강렬했다. “닭, 돼지, 소, 물고기(원문은 ‘동물’)를 죽이려면 살아남으려고 발악을 하는 그들의 품속에서 목숨이라는 것을 폭력을 써서 빼앗아야 한다. (중략) 목숨을 빼앗을 때에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기로 태어나서> 중)

낚시는 오랜 여가생활 중 하나이며 명상에 비견될 만큼 사람에 따라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TV에서 전기충격을 줘 기절시켜야 맛있고 상품손상이 없다며 웃어대는 낚시 장면이나, 소문난 강태공 연예인이 다 못 먹어 냉동실 그득히 쌓여 있는 자연산 물고기를 과시하는 모습, 대형잉어를 토막 쳐 선혈이 낭자한 장면에 사위를 향한 장모의 사랑을 얹히는 방식과 무의식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나아가 생계가 아닌 취미로서의 낚시행위에 법적 제한이 필요하다. 21세기는 인간이 생물권에 초래하고 있는 막대한 영향과 변화들을 근거로 ‘인류세’로도 불린다. ‘인간고기’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마음 편히 있지는 말자. 인류세가 어떻게 기록될지는 순전히 인간의 몫일 테니까.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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