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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중심에 두는 야당은 ‘기승전 정권심판’ 태도보다는 좋은 것 아닌가? 왜 수년간 제1야당을 시민의 삶으로부터 이반되었다고 비판해온 필자는 이와 같은 긍정적 변화에도 또 삐딱하기만 할까?
존경하는 강준만 교수님이 필자에게 평소에는 예의 바르고 점잖은데 왜 글에는 그렇게 가시가 돋쳤는지 의아하다고 하신 말씀이 갑자기 마음에 걸린다.
물론 먹고사는 문제에 무관심한 정당에서 탈피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인간적인 가치 정당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한 채 경제 정당으로 도약하는 것은 불완전한 꿈이다. 인격과 경제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최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4월호는 당연하지만 쉽게 간과하는 그 연관성을 공개한 바 있다. 그건 인격의 수준이 높은 최고경영자(CEO)군이 그렇지 않은 군보다 5배나 더 높은 재무성과를 성취한다는 연구 결과이다. 인격을 나타내는 4가지 지표는 책임, 관용, 공감, 강직함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높은 인격을 가진 리더들은 자기 자신에게 매긴 점수가 직원들의 평가보다 훨씬 낮고 자기도취형 리더들은 그 반대라는 결과이다. 아마 유체 이탈형이나 소시오 패스형 리더들은 그 간극이 하늘과 땅일 것이다.
과연 야권은 이 4가지 지표에서 유능한 정당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체계적 분석을 해보아야 알겠지만 한 가지 불안감은 이 대한민국의 문명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는 비극 이후에도 아직 세상에 회자되는 리더들의 감동적 연설문이 없는 이유는 뭘까 하는 퍼즐이다. 세기의 사건은 세기의 문장을 남기는데 말이다.
어쩌면 그 이유는 자신들의 인간적 가치를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세월호 시대’에 실천적 책임과 공감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것과도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 진정성 있는 경험이 명문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너무 공감하면 피로감을 확산한다고? 그래서 최근에 세월호 이슈에 대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움직임이 신중해진 걸까? 하지만 유가족과의 공감은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과 초당적 원칙의 문제이다. 문제는 공감의 과잉이 아니라 정치공학의 과잉 아닌가? 세월호 비극에 대한 여권의 실정을 쉽게 공격하기 이전에 책임 윤리를 가지고 스스로의 패러다임을 먼저 성찰했는지도 의문이다.
새정치연합이 가진 환상의 토대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1992년 미국 클린턴 진영의 전설이다. 하지만 클린턴 후보가 진실한 태도로 “나는 당신의 고통에 공감합니다”라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경제 구호도 먹힐 수 있었다는 점을 너무 쉽게 잊는다.
어쩌면 야권이 가진 환상의 또 하나의 근저에는 진보적 경제에 대한 소망도 깔려 있는지 모른다. 많은 이들은 한때 절차적 민주주의는 성취되었으니 이제 평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과제에 집중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가 이룬 민주화는 견제와 균형, 법치주의, 공감과 강직함의 시민 문화가 결핍된 반쪽 민주주의에 불과하다는 점을 직시하지 않는다. 선진국도 인격 테스트를 먼저 통과하지 않으면 다시 경제적 위기가 슬금슬금 다가온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영농조합을 찾아 된장 맛을 보고 있다. _ 연합뉴스
현 박근혜 정부의 코미디는 그들이 입만 열면 이야기하는 경제 살리기의 첫 단추가 인간적 가치를 가진 리더십의 형성이라는 글로벌한 상식에 둔감하다는 점이다.
더 웃기는 것은 이들이 시민교육과 인성교육을 중요 아젠다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 정도 되면 <풍문으로 들었소> 드라마와 현실 중 어느 스토리가 더 웃기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토록 경제를 살리고 시민교육을 활성화하고 싶으면 당장 유가족과 함께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면 된다.
‘세월호 순간’ 이후 이제 한국 정치는 임계점을 넘었다. 최근의 변화를 의미심장하게 추적하고 있는 유승찬 스토리 닷 대표는 세월호 1주기 당일 트위터 등에서의 세월호 언급량이 43만2470건을 기록하여 빅데이터 관측 사상 최대 규모라며 놀라워했다. 아마 이후 야권은 바보짓만 자제한다면 총선과 대선에서 대파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최근 경제 정당 이미지로의 변신 시도는 여기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짜 유능한 경제 정당으로 대전환하려면 먼저 책임, 관용, 공감, 강직함의 4가지 지표에 유능한 인간적 가치 정당이 되어야 한다. 세월호와 성완종 게이트, 그리고 중앙대 이사장 파동, 이 일련의 사건들은 이제 인간적인 가치에 충실한 리더들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가오는 경제적 파국을 생각한다면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안병진 |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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