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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71명이 경기 평택시 쌍용차 공장으로 들어섰다. 9년여 만의 첫 출근이다. 지난해 9월 회사와 노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해고자 119명을 올 상반기 안에 단계적으로 복직시킨다는 데 합의했다. 그 시각, 파인텍 해고자 홍기탁·박준호씨는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에서 고용과 생계 보장을 외쳤다. 이날로 415일째 고공 농성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하며 노동개혁을 약속했다. 이어 노동소득 분배를 통한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주 52시간 근무제 확립 등을 제시했다. 취임 사흘째인 2017년 5월12일에는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다. 두 달 뒤에는 20만5000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최저임금을 16.4% 인상하고, 7월에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주 52시간제 시행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원대했다. 모두들 ‘촛불정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힘찬 새출발 10년 만에 복직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지난달 31일 오전 경기 평택시 쌍용차 평택공장으로 출근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노동존중’은 지속되지 못했다. 재계의 저항이 거세지면서 실행은 지지부진했다. 많은 공약은 굴절되고 수정됐다. 재계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이 고용과 경기를 악화시킨다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고용 하락, 물가 상승 등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정부는 재계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야만 했다. 공공기관은 물론 기업의 정규직 전환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최저임금은 2019년 인상률이 10.9%에 그치면서 ‘1만원 공약’ 실현이 어렵게 됐다. 주 52시간제 역시 현장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위반 사업장에 대한 처벌 유예기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새해 들어 문재인 대통령은 연일 경제활력을 강조하고 있다. 민생경제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이해되지만, 취임 초 강조했던 ‘노동존중’의 목소리는 약해졌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자료에는 ‘노동자’ 대신 ‘근로자’라는 용어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노동부 장관은 ‘노동존중’에 앞서 ‘고용 하락’을 우려한다. 이재갑 장관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노동계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다 일자리 수를 놓쳤다”고 말했다. 재계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노동개혁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노동단체들은 노동자의 단결권·교섭권 확대를 위해 정부에 국제노동기구(ILO) 핵심조항 비준을 요구하고 있지만, 성과는 없다. 오히려 정부는 재계가 요구해온 탄력근로시간제 확대, 최저임금 속도조절 등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자는 기업과 함께 경제를 이끌어가는 양대 축이다. 경제활력을 이유로 권리나 존엄이 침해받아서는 안된다. 오히려 노동이 존중받을 때 기업과 경제 모두가 튼실할 수 있다. 취임 전 문재인 대통령은 “성장정책의 맨 앞에 노동자의 존엄, 노동의 가치를 세우겠다”고 말했다. 집권 3년차를 맞아 노동개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노동자의 삶과 존엄이 무너지고 있다. 정부가 ‘위험의 외주화’를 방치하는 사이에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3년째 고공에서 굴뚝농성하는 해고 노동자들을 언제까지 ‘노사 간 풀어야 할 문제’라며 방관할 것인지 묻고 싶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9년 만에 복직할 수 있었던 것은 경사노위를 통한 정부의 중재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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