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해 1월 청와대가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민주화시대가 열린 이후에도 권력기관은 각 기관의 조직과 권력의 편의에 따라 국민의 반대편에 서왔다”며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의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핵심은 검찰의 직접수사 축소,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 자치경찰제 시행 등이었다. 이어 6월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조 수석, 박상기 법무부·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을 발표했다. 청와대 발표로부터 1년이 흐른 지금, 유감스럽게도 가시적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사법·권력기관의 ‘제자리 찾기’는 2019년의 과제로 넘어왔다.

권력기관 개혁은 ‘촛불 혁명’의 핵심적 요구이자 시대적 과제다. 시민은 검경과 국정원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을 거치며 권력사유화의 도구로 전락하는 광경을 목도했다. 당초 법관 사찰 의혹으로 불거진 ‘양승태 사법농단’의 파장이 재판거래로까지 확대되며 ‘믿었던’ 법원마저 정권과 유착해 사익을 챙겼음을 확인했다. 촛불 시민의 요구는 분명하다. 각 기관 간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을 분산하고, 시민 참여 확대를 통해 이들 기관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일이다. 권력기관을 현실정치와 절연시키고 본연의 임무에만 전념토록 하자는 것이다.

개혁의 제1 타깃은 검찰이었고, 여전히 검찰이어야 한다. 수사권과 기소권, 영장청구권을 모두 보유한 무소불위 검찰의 권력을 분산하는 일은 민주주의 심화를 위해 절실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1년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공저한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차기 민주정부의 첫 개혁 과제는 검찰개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개혁의 핵심 표적이던 검찰은 적폐청산 수사에 성과를 내며 외려 다시 힘을 얻는 형국이다. 반면 검찰개혁의 요체로 꼽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문제는 자유한국당의 완강한 반대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법원의 현주소는 더욱 참담하다. 공분을 불러일으킨 사법농단 사태는 마침내 헌정 사상 첫 전직 대법원장(양승태) 소환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법원은 환부를 도려내는 대신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사법농단 수사에는 영장 기각으로 방어하더니, 사법행정 개혁 역시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을 대부분 유지하는 방향의 누더기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2일 시무식사에서 “사법개혁이라는 시대적 사명의 완수를 위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이라고 했으나 공허할 따름이다. 국정원 개혁 역시 대공수사권 이관을 3년간 유예하자는 주장이 일부 야당에서 제기되며 지지부진한 상태다.

권력기관 개혁 표류의 1차적 책임은 개혁에 소극적인 개혁 대상들과 자유한국당에 있다. 권력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 시민의 민주적 통제 강화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에 저항하는 것은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시대착오적 태도일 뿐이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도 여소야대의 정치지형만 탓해서는 곤란하다. 한국당을 최대한 설득하되,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다른 야당과 개혁입법 블록을 구성해 교착 국면을 돌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올해 하반기로 넘어가면 정국은 완연히 총선 분위기로 흐르게 된다. 상반기 내 개혁입법에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또다시 개혁이 물 건너갈 수도 있다. 사법시스템과 권력기관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된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