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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이 다한 원전은 순차적으로 폐기하자. 원자력·석탄화력 대신 LNG·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자.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자. 지역별로 요금을 다르게 하자. 송전소·송전탑을 세울 때는 주민 의견을 철저하게 수렴하자. 대기업의 자가발전을 늘리자. 경향신문이 녹색당과 공동으로 제안한 ‘에너지 전환을 위한 10대 제언’ 내용이다. 경향신문이 지난달 20일부터 7차례에 걸쳐 심층보도한 기획시리즈 ‘전기중독사회를 넘어서’가 내린 결론이라고 할 수도 있다.

화석에너지에 기반을 둔 중앙집중식 에너지 시스템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통한 분산적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자원 고갈 위기를 겪고 있는 전 세계의 과제다. 한국의 에너지 정책과 그에 따른 에너지 소비 행태는 이러한 국제사회의 흐름과 정반대로 ‘전기 중독’에 빠져 있음을 시리즈는 지적했다. 한국은 세계 10위 전기 소비국이다. 1인당 전기 소비량은 일본·프랑스·독일·영국 등 선진국을 능가한다. 석유·가스 등 다른 에너지를 전기로 대체하는 ‘전력화 현상’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값싼 전기요금, 공급 위주 에너지 정책이 빚은 당연한 결과다.

부산울산지역 시민환경단체 회원들이 12일 에너지위원회가 열리는 서울 중구 롯데호텔앞에서 고리1호기 폐쇄 권고안 수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출처 : 경향DB)


문제는 이런 정부 정책이 쉽사리 개선될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정부는 지난 6일 이달 말 확정할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전력 수요 증가율과 전력설비 예비율을 높게 잡아 원전 2기를 추가로 건설하겠다는 잠정안을 내놨다. 전기 과소비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원가 이하의 산업용 전기요금을 현실화하는 방안 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지난 21일에는 냉방 수요가 급증하는 여름철 전력피크를 높일 전기요금 인하 조치까지 내렸다. 전기 중독을 조장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그렇지 않다면 정부는 ‘에너지 전환을 위한 10대 제언’에 귀를 기울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에너지 전환에 무관심하고 오히려 역주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이에 지방자치단체와 주민, 시민사회는 이미 활발하게 대안을 찾아 고민하고 있다. 전기요금 지역 차등제, 송전탑 갈등, 원전 추가 건설 반대, 고리 1호기 폐로를 주장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전기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이런 자발적인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그게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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