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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하는 국회법’이라는 게 일종의 형용모순이다. 주권자를 대의하는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놀고먹었으면 응당한 ‘일하는 것’을 법으로 강제해야 할까 싶다. 정당한 이유 없이 회의에 빠지면 페널티를 부과하고, 국회 파행 시 세비 삭감과 해당 정당에 불이익 조치, 본회의와 상임위 자동 개최, 국회 윤리특위 강화 등을 규정하는 국회개혁안이 더불어민주당 당론으로 추진된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국회의원들이 회의에 빠지는 것을 일일이 따지고,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의회에까지 도입하자는 현실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얻게 된 20대 국회의 실상이 ‘일하는 국회법’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20대 국회의 법안 처리 비율은 30% 미만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계류 법안이 1만6000여건임에도, 올 들어 본회의를 열어 법안을 처리한 것은 다섯 차례에 불과하다. 패스트트랙 국면에선 ‘동물국회’가 재연됐고, 하반기에는 ‘조국사태’가 블랙홀 역할을 하면서 국회는 파행과 굴절을 거듭했다. 이렇게 국회가 문을 여는 날보다 닫는 날이 많으면서 화급한 민생·경제 법안과 개혁 과제들은 켜켜이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국회에 대한 신뢰도가 국가사회기관 중 매번 꼴찌를 기록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야는 비난 여론이 비등할 때마다 일하는 국회를 위한 개혁 방안을 내놓았지만 구두선에 그쳤다. 이미 ‘일하는 국회법’이 지난 7월부터 시행됐지만 국회의 모습은 변한 게 없다. 각 상임위에서 법안심사소위를 매달 2번 이상 개최한다는 것을 못 박고 있지만 여태 이를 이행하는 상임위는 없다. 국회가 스스로 일하겠다는 법을 만들어 놓고 지키지 않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11일 의원총회를 열어 정상적 회의 개최와 ‘회의 불출석’ 국회의원 징계, 국회 윤리특위 상설화, 국민소환제 도입 등 국회개혁안을 논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주에 당 국회혁신특위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한다. 사실 ‘일하는 국회’를 만들자는 취지에서는 자유한국당도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20대 국회가 5개월밖에 남지 않았고 정기국회 이후엔 법안 심사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전도는 불투명하지만, 여야가 의지만 있다면 ‘일하는 국회법’의 성안이 불가능한 건 아닐 터이다. ‘일하는 국회’를 위한 제도적 정비를 서둘러 ‘21대 국회’는 혁신의 문을 열고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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