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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이 공무원연금 문제로 어제 돌연 사퇴했다. 조 수석은 ‘사퇴의 변’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이 대통령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논의마저 변질되고 있는 현실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특히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 국민연금을 연계시키고 기초연금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 “개혁의 취지를 심각하게 몰각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가 무산된 뒤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이 누차 밝혀온 입장이다. 조 수석이 이런 이유로 갑작스레 사의를 표명하고, 대통령이 즉각 수리한 조처가 뜬금없이 비치는 까닭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여야 합의안을 비난하고, “연금 포퓰리즘으로 도탄에 빠진 그리스가 남의 일이란 보장은 없다”고 겁박하는 일개 수석의 ‘사퇴 변’을 가감 없이 브리핑했다. 청와대가 정무수석의 사퇴까지 꺼내 들어 ‘공무원연금과 공적연금 연계 불가’라는 대통령의 원칙을 못 박으며 여론전을 벌이는 꼴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지난 15일 당·정·청 회동을 열고 지난 2일 야당과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그대로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새누리당은 ‘협상재량권’을 확보했다고 보고 본격 대야 협상에 나설 방침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명문화 대신 ‘기초연금 강화’를 대안으로 내놓을 수 있음을 밝힌 상태다. 여야가 새로운 환경변화를 토대로 어제 원내수석부대표 회동을 갖고 협상을 재개하려는 판에 청와대가 조 수석의 사퇴를 앞세워 또다시 가이드라인을 치고 나섰다. 지난 5일 여야 원내대표 회담을 앞두고 무책임한 ‘1702조원 세금폭탄론’을 터트린 연장선상이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왼쪽)과 조윤선 정무수석이 지난해 8월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실로 걸어가고 있다. _ 연합뉴스


어렵사리 마련한 ‘사회적 대타협’을 무산시킨 청와대가 이렇게 여야 협상의 고빗길마다 개입하고 국회를 압박하게 되면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처리는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지침에 끌려다니는 여당과 반발하는 야당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봐야 소용없기 십상이다. 청와대가 겉으론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조속한 처리를 말하지만, 실은 박 대통령의 기대치에 미흡한 이번 안 자체를 무산시킬 속셈 아니냐는 의구심만 키울 뿐이다. 여야가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을 수 있으려면, 청와대가 여당을 로봇처럼 조종하고, 야당을 압박으로 굴복시키려는 태도부터 접어야 한다. 그게 공무원연금 개혁을 한시라도 빨리 성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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