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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에서 진솔한 대화나 정치적인 타협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사회적 난제를 풀어가며 국제사회에서 한 나라의 위상을 정립해갈 수 있을까?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가 하면 최근 내가 경험한 몇 가지 사례가 내가 태어난 조국인 대한민국과 내가 선택한 나라인 미국 모두에 우려할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50여년 전 한국을 떠난 나는 한국에서 받은 은혜를 감사하게 생각한다. 미국에서도 한국이 성숙·발전해가는 모습을 보며 많은 긍지를 느끼며 살아왔다. 나의 미국인 친구들도 존경심을 표시하면서, 때로는 경이로운 시선으로 한국을 칭찬해왔다. 나도 전보다 한층 한국에 친숙해졌고, 사업상 또는 관광차 매년 서너 차례 고국을 방문하면서 옛 친구도 만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이처럼 나는 내가 새롭게 알게 된 모국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몇 개월 동안 서울에서 살게 되었고, 점차 한국 사회에 몰입하면서 심각한 문화충격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여전히 아름답고, 음식이 훌륭하고, 의술도 현대화되었다. 서울은 세계적 수준의 도시이지만, 두 가지 사실이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첫째,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극단적인 ‘악마화 현상’이다. 자신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상대방에 대해서는 악의적인 막말로 매도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상대방의 견해를 조용히 경청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과 다른 견해를 매장하기 위해 독설의 수위를 높이는 꼼수를 부린다.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나의 오랜 지인, 도널드 그레그는 최근 펴낸 자서전 <역사의 파편들-CIA와 백악관, 그리고 남북한에서 겪은 삶의 편린들>에서 그런 현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악마화는 선동에 의해 부추겨지는 적대감을 유발하게 되어 결국 모든 당사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물론 미국에서도 악마화의 첫 단계인 정치적인 극단주의가 존재한다. 이런 현상은 랜드연구소의 짐 톰슨이 진행한 ‘양분된 의회- 양극화와 그 영향’이라는 연구에 잘 정리돼 있다. 악마화의 결과로 온건파 정치인들이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 결론이다.

둘째, 부패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현상에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요즘 부패 스캔들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빈발하고 있다. 물론 어느 사회이건 인간이 관계되는 조직에는 부패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의 부패는 예외적인 것이지 의례적인 것이 아니다.

근래 내가 만나본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부패를 의례적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보이며, 한국은 부유층에 의해 통치되고 있으며 모든 부자들은 다 썩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때로는 정치적인 투쟁에서 패배하는 경우 패자들의 비리가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고 나의 한국 지인들은 말한다.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 집권자들은 응당한 정치적,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부당하게 취득한 재산상의 이익이나 자신들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한다. 최근에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기업인들은 한국의 부패를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는데, 한국의 부패지수는 홍콩보다 2.5배, 대만의 3배 이상이었는데 싱가포르의 부패를 손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의원총회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의 공무원연금 협상 등의 보고를 듣던 중 질문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한국은 북한에 대해서나 동아·태 지역에서의 안보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다가오는 ‘태평양 세기’에 사회, 경제적 준비를 하는 데 있어서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나의 바람은 이 나라의 정계, 재계, 사회 지도자들이 우선은 상대방의 견해를 경청하고 심사숙고한 뒤 발언을 했으면 하는 것이다. 거꾸로 된 순서로 행동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도출하는 결론이 개인적인 이해를 뒤로하고 국가를 최우선시하는 정책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스펜서 김 | 미국 CBOL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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