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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고리원전 1호기의 재가동을 허용했다. ‘후쿠시마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정전사건이 뒤늦게 알려져 가동이 중지된 지 4개월도 안돼 내린 결정이다. 안전위는 “전력계통, 원자로 압력용기, 장기가동 관련 주요 설비, 제도 개선 측면을 총체적으로 점검해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하나 주민 불안과 불신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킨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고리1호기의 안전성 문제는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이미 끝난 설계수명을 연장한 ‘노후 원전’이며, 전체 사고·고장 건수의 20%를 차지하는 ‘사고 원전’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중고부품, 짝퉁부품, 납품비리 등으로 ‘비리 원전’이라는 오명까지 얻고 있다. 그제는 고리원전 반경 5㎞ 안에 20년 이상 살았던 일가족 3명이 “원전 때문에 암과 자폐에 걸렸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사고 위험과 주민 건강 피해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서둘러 ‘안전성 확보’ 결정을 내린 까닭이 궁금하다.
고리원전 재가동 반대하는 녹색당 (경향신문DB)
더 큰 문제는 ‘은폐 원전’이라는 또 다른 오명과 관련된 것이다. 지난 2월 정전사건 은폐와 같은 비밀주의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07년 수명 연장을 결정한 근거인 안전성 평가와 관련한 3가지 보고서마저 국회와 시민단체 등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기초적인 정보마저 숨긴 채 “안전하다”고 하면 누가 신뢰하겠는가. 그런 평가가 정전사건을 일으킨 비상디젤발전기 등의 문제를 잡아내지 못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의해 또다시 내려졌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중요한 결정을 하는 이번 회의에 주민과 시민단체 등의 방청을 거부한 것도 문제가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원자력추진위원회’ ‘원자력불안전위원회’라는 소리를 듣는 데는 이런 비밀주의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식경제부는 안전위의 승인에도 불구하고 주민 반발을 감안해 고리1호기를 즉시 재가동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재가동에 앞서 주민 신뢰를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투명하지 않고 안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고리1호기를 이대로 재가동해서는 안된다. 당장은 재가동이 아니라 재검토가 필요하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원전이 결코 에너지를 값싸고 친환경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닌 만큼 원전 비중을 줄이는 쪽으로 국가 에너지 수급 대책을 새로 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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