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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을 경악하게 한 군대 내 인권유린 사건을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해놓고도 덮은 게 드러났다. 인권위는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이 사망한 지난 4월7일 윤 일병의 지인이 제기한 진정을 접수했다고 한다. “피해자가 음식물을 먹다가 사망했는데 몸과 다리에 최근에 생긴 것으로 보이는 선명한 상처와 피멍 자국이 있어 조사를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달 14~15일에는 현장조사까지 벌여 끔찍한 구타와 가혹행위를 확인했다. 하지만 이미 군 수사당국이 전반적인 수사를 완료하고 가해자 등을 군 검찰에 송치했다는 것을 이유로 후속조치에 대한 조사에 치중했다. 그리고 인권위가 설명한 조사 경과와 후속조치를 유가족이 받아들였다고 해서 진정을 각하 종결했다고 한다.

인권위가 ‘해결’했다는 윤 일병 사건이 100여일 후인 지난달 31일 비정부기구(NGO)인 군인권센터의 문제제기로 세상에 알려져 국가적 사안이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제야 인권위는 지난 4일 현병철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통해 직권조사를 벌일 뜻을 밝혔다. 어제는 상임위원회를 열어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이 일어난 28사단과 일반전초(GOP) 총기난사 사건 및 관심병사 자살사건이 잇따른 22사단 등 최근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한 4개 부대에 대해 직권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사안이 중대하다고 인정될 때는 진정이 없더라도 직권조사를 할 수 있음에도 그동안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다 문제가 되니까 부랴부랴 시늉을 하는 모습이다. 국가 최고 인권기구가 NGO보다 역할도 존재감도 없는 셈이다. 게다가 군인권센터는 어제 윤 일병의 직접 사인이 구타일 가능성과 강제추행 정황, 헌병대와 군검찰의 수사 축소·은폐 등 추가 의혹을 제기하며 한참 앞서나가고 있다.

가해자들의 뒷모습 5일 경기 양주시 육군 28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윤모 일병 사망사건 가해자들이 호송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청와대·군·검찰·경찰 등 권력기관의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바로잡도록 하는 게 인권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지금의 인권위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권력기관의 눈치를 보다 문제가 커지면 ‘뒷북’ 대응에 나서는 행태를 신기할 정도로 반복해오지 않았는가.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만 하더라도 2010년 7월 피해자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가 진정을 내자 6개월 동안 시간을 끌다가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각하했다. 그 뒤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로 파문이 커지자 직권조사에 나서 임기를 보름 남긴 당시 이명박대통령에게 불법사찰 근절을 위한 조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쌍용자동차 사태, 용산참사, 밀양 송전탑 농성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국가인권위라면 존재 이유를 스스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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