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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아내와 함께 골프를 치다 낙뢰에 맞아 숨졌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보니 사망자가 환히 웃고 있었다. 부인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 “글쎄 번개가 번쩍 하니까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줄 알고 미소를 짓지 뭐예요?” 새정치민주연합 우상호 의원이 블로그에 올려놓은 우스갯소리다.

카메라를 의식하는 것은 정치인의 본능이다. 주위에 카메라가 보이면 목에 힘 주고 삿대질도 폼 나게 하면서 국정을 논하지만 카메라가 가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태도를 바꾸기 일쑤다. 동영상 한 장면, 사진 한 컷이 다 득표에 도움되는 이미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중요한 정치적 발언을 할 때는 카메라가 도착했는지 반드시 먼저 확인하곤 했다.

정치인은 가는 곳마다 사진으로 찍어 남기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 때로는 그게 강박관념이 되어 화(禍)를 부르기도 한다. 1997년 8월 대한항공 여객기가 괌에 추락하는 사고가 났을 때 현장을 찾은 신한국당 의원들은 비행기 잔해 앞에서 단체로 기념촬영을 했다. 카메라 앞에 설 때 의원들은 다음 선거 때 돌릴 의정활동 보고서에 근사하게 담길 사진을 머릿속으로 그렸겠지만 문제의 촬영 장면이 경향신문에 특종 보도되면서 홍보는커녕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정치인들의 연예 생활 (출처 : 경향DB)


한번 말썽이 나면 조심할 것 같지만 본능이란 자제가 잘 안되는 법이다. 새누리당 김태호 의원은 얼마 전 순직한 소방공무원 영결식장에서 여성 경찰과 기념사진을 찍었다가 혼쭐이 났다. 4년 전 공성진 전 새누리당 의원이 천안함 구조 중 순직한 한주호 준위 장례식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것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이번에는 국방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윤모 일병 사건이 벌어진 부대 내무반을 찾아 군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해 물의를 빚었다. 한 군인이 참혹하게 죽어간 현장에서 무얼 기념한다고 단체사진을 꼭 찍으려 드는지, 운동회를 하는 것도 아닌데 주먹 쥐고 ‘파이팅’은 왜 하는지 볼썽사납다는 반응이 많다. 사진 찍을 때와 찍어서는 안될 때를 구별하는 것은 쉽고도 어렵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 공감능력이 없으면 정치를 그만두는 게 낫다.


이종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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