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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사건 부실수사의 책임을 지고 이성한 경찰청장이 물러나고 강신명 서울청장이 후임으로 내정됐다. 강 내정자는 청렴, 강직하고 조직 위아래 두루 소통하는 지휘관으로 평가받아 왔다. 업무 면에서도 경찰청은 물론 청와대 주요 부서까지 두루 거쳐 탁월한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필자는 강 내정자와 경찰대학 동문이고, 경찰조직에서 여러 해 동안 같이 일해 청장 업무를 누구보다도 잘 수행할 것으로 믿는다.

이번 청장 내정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첫째 1981년 문을 연 경찰대학이 33년 만에 첫 경찰청장을 배출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해결해야 할 경찰조직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점이다.

경찰대학은 1979년 박정희 피살 이후 전두환 신군부가 그해 12월28일 ‘경찰대학설치법’을 제정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국민의 환심을 살 만한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했는데 그중 하나가 경찰대학 설립이었다. 경찰대학의 특혜는 파격적이었다. 4년 학비 면제는 물론 매달 생활비까지 받았다. 졸업 후 경위로 임관하면 전경대 소대장 2년 근무로 병역의무가 면제됐다. 전경대 근무를 마치면 지역 기관장인 파출소장으로 발령받았다. 전국에서 수험생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최고의 엘리트를 선발해 4년 동안 정예 경찰간부로 육성되었다. 15만 경찰관 중 늘 선두에서 업무능력을 발휘했지만, 경찰청장 배출을 앞둔 지금 그런 엘리트 과정이 오히려 결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강 내정자는 이런 우려가 불식되도록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가는 국민을 이해하는 경찰청장이 되어 주길 바란다. 주차위반으로 6만원 범칙금을 받으면 하루 일당이 날아가는 국민이 많다. 새벽 2~3시 동대문시장 옷가게에 가보면 서민들이 얼마나 바삐 살아가는지 피부로 체험할 수 있다.

첫 경찰대 출신 경찰청장 내정자 강신명 서울청장이 6일 오전 경찰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 들어서고 있다. (출처 : 경향DB)


다음으로 예방치안과 협력치안을 당부하고 싶다. 대한민국 치안을 경찰 혼자만의 힘으로 다하려 하지 말고 각 민간 봉사단체와 힘을 합해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지역 사정에 밝은 주민들의 협력을 최대한 이끌어내야 한다. 예방치안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협력치안이 가능해진다. 이번 유병언 사건에서는 안타깝게도 협력치안을 하지 못해 수사에 실패하고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지 않았는가?

또한 현장 경찰관의 노고를 이해하고 경찰조직의 위상을 높이는 청장이 되길 바란다. 그들은 밤샘 근무를 하며 주취자에게 시달리고, 사건 현장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또한 양 당사자의 첨예한 대립을 조정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따라서 현장 경찰관의 판단이 그만큼 중요하다. 현장 경찰관이 상부의 눈치와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양심에 따라 일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수사경찰관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경찰의 자존심과 직결된 문제다. 경찰은 2011년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수사개시권을 명시적으로 획득했다. 그런데 국민이 의혹을 제기하는 사건에 대해 수사개시권을 발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유병언 사건 관련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 수사개시권을 발동해 그간 실추된 경찰의 명예를 제대로 회복해야 한다.

강 내정자는 청와대에서 근무하며 정권과 눈높이를 같이한 바 있고, 그 이력이 청장 내정에 큰 힘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권의 판단과 국민의 인식 사이에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 그래서 경찰청장이 국민의 경찰이 아닌 정권의 경찰로 편향될까 걱정하는 의견도 많다. 경찰대학이 비록 정권의 이해에 따라 탄생했지만 33년이 지난 이제는 그렇지 않다. 명실상부한 국민의 경찰이 되어야 한다. 강 내정자가 경찰에 대한 국민의 큰 기대를 잘 헤아리고 오직 국민을 위한 안전과 사회질서를 지키는 데 온 힘을 쏟기를 기대한다.


채수창 | 경찰관인권연대 대표 전 서울강북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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