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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파기환송심 공판에서 충격적인 내용의 국정원 자료가 공개됐다. 2009~2012년 원 전 원장이 주재한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을 보면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벌인 정치공작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 수뇌부가 모인 자리에서 총선과 지방선거 개입을 노골적으로 지시했다. 그는 2011년 11월18일 차장과 기조실장, 전국 지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12월부터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다. 지부장들은 현장에서 교통정리가 잘될 수 있도록 잘 챙겨보라”고 말했다. 2009년 6월19일 회의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11개월 남았는데 우리 지부에서 후보들 잘 검증해야 한다. 1995년 선거 때도 구청장 본인이 원해서 민자당 후보 나간 사람 없고 국정원에서 다 나가라 해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이 정부·여당의 선거대책본부 역할을 한 것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맞먹는 국기문란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황보연 전 황보건설 대표로부터 억대의 금품과 고가 선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대선·정치개입 사건'과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원 전 원장은 이번이 세번째 검찰 소환이다. 연합뉴스

국정원이 강압적으로 언론 통제를 시도했다는 점도 확인됐다. 2009년 12월 회의에서 원 전 원장은 “기사가 난 다음 보도를 차단시키겠다는 건 무슨 소리냐. 기사 나는 걸 미리 알고 못 나가게 하든지 아니면 기사 잘못 쓴 보도 매체를 없애버리는 공작을 하는 게 여러분이 할 일이지 이게 뭐냐. 잘못할 때마다 쥐어패는 게 정보기관이 할 일이지 그냥 가서 매달리고 어쩌고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하에서는 언론 자유가 매우 위축됐으며 특히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는 경영 환경이 나빠졌다.

2013년 검찰의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때 국정원은 같은 제목의 회의 녹취록을 검찰에 제출했다. 그러나 당시 국정원은 원 전 원장의 발언 등 문제 소지가 있는 내용을 모두 지워 범죄 증거를 은폐했다.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한 국정원 수뇌부의 회의 내용은 영구히 묻혔을 것이다. 원 전 원장과 국정원의 범죄 혐의가 추가로 드러난 만큼 검찰은 즉각 수사에 나서야 한다. 검찰은 국정원의 선거 개입과 언론 통제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이 전 대통령이 이런 사실을 원 전 원장에게 보고받았는지 등을 규명해 관련자 모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국정원도 자체 조사를 통해 잘못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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