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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세 중의 실세’로 통하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파이시티 비리로 구속됐다. 구치소행 차량에 오르는 그의 모습은 이명박 정권의 도덕성에 ‘파산 선고’가 내려졌음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박 전 차관과 이 대통령 일가의 각별한 인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의 보좌관으로 대통령 형제와 인연을 맺은 그는 정권 출범 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과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왕차관’으로 불릴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그가 수많은 비리 의혹에 휘말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터이다. 과거 박 전 차관의 권력사유화를 비판했던 정두언 의원은 “4년 전부터 일종의 112 신고를 했고, 여러 차례 경고하고 언질을 줬는데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전 차관의 구속영장에서 드러난 혐의는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에게서 1억7000만원을 받고 그 대가로 인허가와 관련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혐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박 전 차관의 형 계좌에선 수상한 뭉칫돈이 수시로 입출금된 흔적이 발견됐다. 총액이 10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검찰은 이 돈이 파이시티에서 추가로 받은 것인지, 다른 기업에서 수수한 자금인지 살펴보고 있다.
박영준 전차장 출두 ㅣ 출처:경향DB
박 전 차관의 금품 수수액도 문제이지만, 금품을 챙긴 경위와 사후 대응을 살펴보면 더 기가 막힌다. 박 전 차관은 현 정권 초기 청와대에 근무할 때도 서울시 관계자에게서 파이시티 인허가 업무를 수시로 보고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검찰 조사에서는 이정배 전 대표를 알고 지낸 사실만 인정할 뿐 돈받은 혐의는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과연 누구에게, 무엇을 죄송해하는지 알 길이 없다.
박 전 차관은 파이시티 비리 외에도 갖가지 의혹을 받고 있다. 우선적으로 규명해야 할 사안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및 은폐조작 과정에 개입했는지 여부다. ‘카메룬 다이아몬드 스캔들’로 불리는 CNK 주가조작 연루 의혹과 포스코 회장 선임과정 개입 의혹도 검찰 수사에서 밝혀야 할 부분이다. 앞서 무혐의 처분된 SLS그룹 구명로비 관련 의혹도 필요하면 재수사해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검찰의 의지다. 그러나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큰 틀에서 마무리 단계로 보면 된다”는 대검 관계자의 말에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이어 박 전 차관을 구속하는 데 성공했으니 그만 손을 털고 싶은가. 박 전 차관의 ‘여죄’를 캐다 불법 대선자금 등 정권에 치명타를 가할 사안이 드러날까 두려운가. 하지만 정권의 비리를 낱낱이 알고 있을 박 전 차관이 수인(囚人)의 처지가 된 이상, 검찰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그 무엇이 나오든 덮을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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