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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용 디지털뉴스편집장


이쯤되면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서야 할 것 같다. 경향닷컴에서 이명박 대통령 친인척 측근비리를 인포그래픽(정보+그래픽)으로 만들어 봤더니 유전자 게놈(genome) 지도처럼 배열구조가 어지럽고 퉁퉁하다. 그림에 등장한 인물을 보면 청와대 참모·가신이 5명, 대통령직인수위·서울시 출신이 5명, 안국포럼이 4명, 손위 동서에 처사촌과 사촌처남 등이 8명이다. 최고원로기구라는 6인회 멤버는 대통령을 빼고 3명이 사법처리됐거나 수사를 받고 있다. 부패율 60%다. 집권 내내 공정사회를 입에 달고 살았던 정권이 이 정도니 그런 구호라도 외우지 않았으면 교도소 한 동이 다 찰 뻔했다. 대통령이 “보급품은 자체 해결하라”고 한 것도 아닐 텐데 수인(囚人)조합에 둘러싸인 그래픽 한가운데 MB의 모습이 꼭 범죄조직 대부 같다.

위에서 돈을 벌면 밑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트리클다운(적하) 효과는 경제 분야보다 비리 쪽에서 더 활발했던 듯하다. 왕(王)차관이란 박영준은 인사를 주무르랴 사찰 보고 받으랴, 거기에 업자 돈까지 받느라 두 손이 부족했을 것이다.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은 ‘슈킨(集金)’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어렵고, 그의 양아들은 업체를 상대로 재혼 축의금까지 박박 긁어 해외로 내뺐다. 여당의 한 이론가가 “지금의 우파는 공공에 대한 사명감과 가치가 미흡한 사익 우파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는데 이들에게 애초 공공의 사명감 같은 게 있기나 했는지 궁금하다. 앉아있는 자리, 손에 쥔 권력을 대선 승리의 상훈이나 전리품으로 여겼으니 강냉이튀밥 주워 먹듯 사방팔방에서 금은보화를 챙겼을 것이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경찰과 세무서 직원이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면 커피값은 누가 내겠느냐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답은 다방 레지가 낸다는 것이다. 어떤 공무원은 식구들과 주말 외식을 하고 그냥 나가더라는 얘기도 있다. 한번도 식당 카운터에 서서 제 손으로 밥값을 내본 적이 없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달라졌나. 천만의 말씀이다. 신문을 펼치면 누가 얼마를 먹어 구속됐다는 기사가 하루도 빠진 날이 없다. 객관적인 지수로도 한국의 부패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로 최하위권이다. 국제투명성기구 조사에서도 세계 183개국 가운데 43위로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아시아 16개국 중에선 11번째다.

 


부패는 성장세가 꺾이지 않는 거대 시장이다. ‘사바사바’ 관행을 외면하고는 장사도, 출세도, 생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뒷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게 부패인지 문화인지 죄의식마저 희미해졌다. 준 공식문화다. 알면서도 묵인하고, 문제가 생기면 재수없이 걸렸을 뿐이다. 걸린 사람도 반성의 기미가 없고, 바라보는 국민도 놀라지 않는다. 수천억원을 빼돌리고 밀항선을 타고 도망치려다 붙잡힌 무슨 저축은행 회장은 수없이 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북은 미쳤고 남은 썩었다.” 황장엽의 남북 비교는 지금 다시 봐도 정확히 맥을 짚은 말이다. 프랑스혁명과 러시아 10월혁명은 귀족의 부패에서 비롯됐다.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정부와 월남은 극에 달한 부패 때문에 무너졌다. 영국의 재상 글래드스턴은 “부패는 국가를 몰락으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대한민국도 지금 몰락의 지름길을 달리고 있는 중일 것이다.

이 정권만 뭐라 할 것도 아니다. 대통령 직선제가 재도입된 1987년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네 정권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 얼굴에 겨 묻고 누구 얼굴에 똥 묻었는지 구분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 앞서 독재정권은 더 말할 나위없다. 어느 정권 할 것 없이 권력 주변에선 말똥구리 쇠똥 파먹듯 신들린 부패경쟁을 벌였고, 종국엔 줄줄이 감옥소로 향했다. 이들에겐 역사의 학습효과도 없는 모양이다.

의식이 부족하면 제도를 만들 수밖에 없다. 사정 책임자를 끼리끼리 인사로 임명해 놓으니 감시는커녕 거꾸로 비리를 감춰주는 방탄 커튼 역할을 했다. 그러니 온 사방에서 돈빨대를 쭉쭉 빨고 있는데도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나왔을 것이다.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4년 전부터 일종의 112신고를 했는데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흉악범보다 더 무서운 게 무능한 경찰이고, 비리를 저지른 놈보다 더 나쁜 게 눈 감은 사정 책임자다.

새 국회, 새 정권에선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를 감시할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반부패 입법의 대표적 케이스로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는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차관급 이상 공무원과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법관과 검사 등 5000여명이 망라돼 있다. 여기에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들도 포함시켜 1년 365일 공수처 특별수사관들의 상시 관찰 대상으로 올려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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