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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주 국회에서 의결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원안 제안자인 김 전 위원장은 “김영란법이 통과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며 “한국 사회의 부패 관행을 바꾸려면 법을 일단 시행한 뒤 개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해충돌 방지 부분이 빠지고, 국회의원의 민원 전달을 부정청탁의 예외로 하며, 가족 범위를 배우자로 한정한 부분 등에는 아쉬움을 표했다. 국회는 김 전 위원장 등의 견해를 경청해 후속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김 전 위원장이 밝힌 대로 김영란법 원안은 부정청탁 금지, 금품수수 금지, 이해충돌 방지 등 세 영역으로 구성돼 있었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해충돌 방지 영역은 제외됐다. 이해충돌 방지는 장관이 자녀를 특채하거나 공공기관장이 친척에게 공사를 발주하는 등 공직자가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막자는 것이다. 이는 반부패 정책의 핵심이자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공직윤리규범이기도 하다. 기존 공직자윤리법에도 ‘이해충돌 방지 의무’ 조항이 있지만 선언적 규정에 불과해 실효성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국회 정무위원회가 약속한 대로 4월 임시국회에서는 이 부분의 입법을 완료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김영란법은 김 전 위원장 지적대로 “반쪽”인 채 시행될 수밖에 없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김영란법’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10일 서강대 다산관으로 플래시 세례에 둘러싸인 채 입장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언론 자유에 대한 김 전 위원장의 언급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적용 대상에 포함한 것과 관련해 “위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헌법상의 언론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사에 착수할 때 언론사에 통보하는 등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검찰과 경찰의 자의적 법 집행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함을 인정한 것이다. 이 부분 또한 보완 입법을 통해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 수사기관이 법 취지를 악용해 언론을 옥죄는 불행한 사태가 와선 안될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김영란법에 대한 최대 저항세력이 ‘우리 안의 부패심리’라고 했다. 적확한 지적이라고 본다.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은 기실 어렵지 않다. 그러나 관행과 의식, 문화를 바꾸는 일은 지난하다. 김영란법을 둘러싼 이견과 논란이 ‘우리 안의 부패심리’와 결합할 경우 법은 좌초하고 부패구조는 온존하게 될 것이다. 법이 시행되는 내년 9월까지 공직사회와 언론, 사학에선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결별하기 위한 자체적 혁신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도 김영란법이 이른 시일 내 안착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치밀하게 만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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