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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가 옛 동대문운동장에 새롭게 개관된 이래 국내외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정작 건축계에서는 초연한 편이다. 하기야 곡절 끝에 준공된 서울시신청사, 혹은 세종시종합청사 등 역사에 남을 굵직한 작품들이 연이어 세상에 나와도 꿀 먹은 강아지처럼 어느 누구 말이 없으니, 정상적이라 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가 밀려온 이래 도취된 듯 비평 없는 현상이 건축계를 휘감아 왔다. 그나마 시민들의 뜨거운 반향이 있어 한국건축의 지점과 존재의 당위성을 거꾸로 배우게 되니 위로로 삼을 뿐이다.

DDP는 서울시청사와 비교하면 ‘턴키방식’이 아니어서 운 좋게 시작됐고, 4인의 국내 저명 건축가들을 포함시킨 국제건축현상설계전을 통해 최종 선택된 작품이며, 설계한 자하 하디드는 공히 세계적 건축가 반열에 오른 작가다.

며칠 전 TV에서 DDP가 서울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하고, 뉴욕타임스에도 유명 건축물의 하나로 DDP가 소개되었다니 일견 쾌거로 보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세계화라는 테제일수록 유럽이나 이슬람국가들처럼 우리 건축에서 김치, 된장, 고추장의 DNA를 끄집어내 우리의 동질성을 즐기려는 자신감이 전제돼야 한다는 게 비록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제 한국은 세계 건축가들이 작품을 다투어 선보이려는 곳이 되었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운 좋게 건축주 대한민국을 만나 대담하고 독특한 디자인개념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한편으론 그동안 완고하게 길들여진 한국 현대건축의 디자인경향과 건축주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었고, 다양성의 계기로 작용하였다.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작가 내면에서 분출하는 퍼포먼스가 한국전통건축에 공간구성의 역동성과 닮아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리베스킨스의 물리적 에너지와도 통한다. 다행히 완결미로 엮어낸 시공기술은 과한 혈세와 내부 공용공간 점유율을 씁쓸하게 메워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현재의 건물기능이 애초의 지역상권과 도시적 맥락의 정책대안으로 해결될 수 있는지는 별개의 기제이다. 근본적으로 건축물로서 자연과 공동체, 인간의 원초적 소통을 필연적으로 차단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의 전경 (출처 : 경향DB)


제3의 공간, 혹은 사이 공간 요소들을 지나치게 절제시킴으로써 부수적인 여러 건축구성 요소들이 고려되지 않은 것은 본래의 대지 여건과 목적에 비추어볼 때, 오만이거나 터무니없는 출가에 가깝다. 동질적 유풍의 프랑크게리와 비교해서, 다양한 공간해석으로 외부와 내부의 사이를 다양하게 넘나들고 만나야 하는 게 ‘동대문’이라는 어법 본래의 지향점일 것이다. 단적으로 대지 조건과 건축의 의미마저 무시한 채, 역사적인 현장을 점유하고 있는 DDP는 태생적으로 ‘정체성 부재와 세계화’라는 아젠다, 논쟁들을 현시대 우리에게 던진다.


이배화 | 한국건축미래설계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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