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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의사를 밝히고,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라면서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남북)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우리는 민족적 대사들을 성대히 치르고 민족의 존엄과 기상을 내외에 떨치기 위해서라도 동결상태에 있는 북남관계를 개선하여 뜻깊은 올해를 민족사의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어야 한다”며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상태의 완화를 위해 남북이 노력해야 한다며 지난해 7월 남측이 제안한 군사당국 간 회담에 응할 가능성도 비쳤다. 각계각층 단체들과 개별적 인사의 대화와 접촉, 왕래의 길을 열어놓겠다며 남북교류 재개 방침도 내놨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일 평양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신년사의 남북관계 개선론이 원론적이었던 것에 비하면 올해 신년사는 구체적이다. 북한이 지난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5형’을 발사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 올해부터 대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처럼 남북대화 의지를 전면적으로 드러낸 것은 주목할 만하다. 김정은의 대화 의사는 핵·미사일 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현 상황을 타개하려는 구상일 수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압박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남북대화를 북·미대화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것일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면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한·미 간 북핵공조를 흐트러뜨리려는 책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화전양면식 신년사’라고 평가절하했다.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든 남북관계는 우리의 필요와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북·미 간 긴장이 전쟁으로 치닫지 못하게 막는 것이 우리의 당면 과제이다. 남북대화가 이 과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6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문제에서 운전대를 잡겠다고 했지만, 그간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핵·미사일 도발을 하는 북한에 대북 군사공격을 거론하는 트럼프 행정부 때문에 한국 정부의 운신 폭이 좁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1월 유엔총회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중 일체의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자는 휴전결의를 이끌어냈고, 북한에 올림픽 참가를 제안하면서 분위기를 다져왔다. 그런 노력에 북한이 화답한 셈이고, 이제야 문재인 정부가 운전석에 올라 실력을 보일 시기가 온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설득해 북·미대화로 이끌어낸다면 동북아에서 한국의 외교적 공간은 그만큼 넓어질 수 있다.

지난 10년간 동결된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데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국제사회의 북핵 공조에 균열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 않도록 주변국과의 충분한 협의도 필요하다. ‘동맹’이냐, ‘민족’이냐는 식의 흑백논리가 부각되면서 남남갈등이 격화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정부 당국은 보수정부 10년을 거치며 생긴 관성을 탈피해 남북관계 개선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디딤돌이 되도록 상상력과 지혜,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북한도 모처럼의 남북대화가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는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 한 달여 남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명실상부한 ‘평화의 제전’이 되도록 준비하려면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남북 체육회담이 열려 남북이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지혜를 모으는 모습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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