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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일자 지면기사-

카나리아는 산소가 줄어들면 노래를 멈춘다. 이 때문에 광부들은 산소가 충분한지 확인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새장에 넣어 갱도에 데리고 들어갔다. 표현의 자유라는 산소를 감지하는 예술가들은 우리 사회의 카나리아라 할 수 있다. 촛불이 켜지기 이전부터 예민한 카나리아들은 위험신호를 여러 차례 보냈다. 그들의 경계경보는 헌법을 유린한 정권을 심판하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드러났다.

블랙리스트 사태는 단순히 지원금을 둘러싼 이념적 다툼이 아니며 예술계에만 한정된 사건은 더더욱 아니다. 블랙리스트 사건의 근원적 문제는 현 정부가 청산하고자 하는 적폐가 자기의 몸통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데 있다. 블랙리스트의 실행은 참여와 협치를 무시한 행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참여정부 시기 도입된 공개성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시스템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관료 중심의 권위주의적 행정으로 되돌아갔다. 상명하복에 충실한 관료 시스템은 결국 원하는 목소리를 내는 카나리아에게만 숨쉴 공기를 부여했다. 적폐청산은 바로 이런 행정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정책을 수행한 공무원들은 문화권력들이 자신들을 흔든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문화예술계에는 일사불란하게 조직화된 권력이 존재하기 어렵다. 이 카나리아들은 저마다 다른 소리로 노래하는 것으로 먹고사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권력을 체계적으로 생성하고 유지하기 쉬운 쪽은 관료집단이다. 폐쇄적 고시제도를 통해 공급되는 관료는 희소하며, 닫힌 조직은 동질성을 유지하기에 용이하기까지 하다. 공익의 수호자이자 공정한 세금의 관리인임을 자처하는 이들은 공익 수호와 감시의 권리를 가진 국민들의 참여를 배제함으로써 문화권력을 독단적으로 장악해왔다.

국민들의 감시의 시선을 피해 이들이 한 일은 성찰 없는 상명하복과 복지부동 그리고 부정부패였다. 국가나 조직의 수장이 바뀔 때마다 쏟아지는 소나기는 꽃보직과 한직을 순회하며 잠깐 피하면 그뿐이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권 인사나 특수한 이익집단의 민원을 들어주면서 소나기가 지나가길 기다리면 됐다. 이 모든 일을 행했던 의사결정 책임자들 중에 눈에 띈 극소수에게만 책임을 묻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바뀌지 않은 시스템과 사람이 자신의 썩은 뿌리를 어떻게 스스로 뽑아낼 것이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문화행정이 권력이 아닌 민주주의에 충실한 자리로 돌아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지금과 같이 정치적 민원이나 특수 이익집단의 요구에 취약한 조직 구조와 인사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정책의 효율성과 공공성을 달성할 수 있는 조직으로 바꾸고 인력 충원의 개방성을 높이는 것이다. 둘째, 정책과정의 공개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국민의 참여와 민간 협치를 확대하는 것이다. 특히 평가와 같이 국정과제나 정책 성과를 확인하는 과정에는 더욱 그렇다. 투명성이 담보된 협치제도와 국민참여제도만이 ‘협치 코스프레’를 견제할 수 있다. 셋째, 문화예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존중한다는 의지를 실천해야 한다. 문화예술위원회 스스로가 표현의 자유를 짓밟도록 제도적 원인을 제공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타 산하기관 및 단체에 대한 자율성과 독립성도 실질적으로 보장해 이들을 블랙리스트의 집행도구로 전락시켰던 과오도 바로잡아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표현의 자유를 가벼이 여긴 사람들이 책임있는 자리에서 새 술을 만드는 데 손을 담그고, 블랙리스트 실행의 수족이 되었던 술부대를 관리하던 사람들이 여전하다면 이것을 새 술이라 믿을 수 있을까. 문화관료라는 장막을 걷어내고 투명한 절차의 협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못한다면 새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신뢰는 생기기 어렵다. 정책운영의 모든 절차를 투명하게 하고 국민 참여와 민간 거버넌스를 실천할 때만 적폐청산 그 이후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홍기원 | 숙명여대 정책대학원 문화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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