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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일자 지면기사-

지난 27일에 외교부 장관 직속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검토 태스크포스’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2015년의 한·일 간 위안부 피해자 합의는 일본 측 요구가 과도하게 반영된 불균형 합의이며, 우리 측에 일방적으로 부담이 되는 이면합의도 비공개로 존재한다는 내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이에 대해 일본의 아베 총리는 “합의는 1㎜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여러 시민단체들은 “위안부 합의를 지금 당장 파기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서, 2015년 12월28일에 양국 외교부 장관들이 기자회견의 형식을 통해 발표한 한·일 간 위안부 피해자 합의는 법적으로 무효이다. 법적 효력이 인정되는 정식 조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국 정상의 추인을 거친 정부 간의 공식적 약속’이기는 하지만, 법적으로는 효력을 인정할 수 없는 양국 정부 간의 정치적 선언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위안부 피해자 합의는 엄밀히 말해서 법적으로는 ‘파기’하고 말고 할 대상도 아니다. 그 이유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첫째, 2015년의 위안부 피해자 합의는 문서화가 되었는지, 양국 정상의 서명과 비준을 받았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우리 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만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조약이란 ‘국가 간의 문서화된 합의’를 말한다. 구두합의나 정식으로 문서화되지 않은 기자회견문이 ‘조약’이 될 수는 없는 이유다.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같은 중차대한 문제를 다룸에 있어 양국의 전권대사가 됐건, 외교부 장관이 됐건 외교적 협상을 통해 일정한 합의에 도달했다면, 이를 정식으로 문서화해야 하고 양국 정상의 서명 등을 통한 정식 비준을 얻어야 조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양국 정부는 이 한·일 간 합의가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서면 합의임을 명확하게 확인해 준 바가 없다.

둘째, 백번 양보해서 문서화되었다고 가정하자. 그래도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법적 피해를 배상받아야 할 피해자 할머니들이 존재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조약으로 체결·비준하기 전에 피해자 할머니들의 충분한 이해와 동의를 구했어야 함은 물론이고, 국회의 사전 동의를 얻었어야 할 문제이다.

우리 헌법은 제60조 제1항에서 8가지 중요한 조약에 대해서는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의 동의를 얻게 함으로써 대통령의 조약체결권에 국회를 통한 민주적 통제를 가하고 있다.

그 8가지 조약 중 하나가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이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기본권은 국회가 만든 법률로써만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 제한을 내용으로 하는 조약은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에 해당한다. 일본군에 의해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법적 권리를 제한하는 내용이 될 수밖에 없는 이 한·일 위안부 피해자 합의는 따라서 국회의 사전 동의를 얻어 체결해야만 하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이 될 수밖에 없다. 국회에는 동의는커녕 정식 보고도 하지 않고 정부 당국자 간의 밀실합의 끝에 양국 외교부 장관들이 기자회견 형식으로 깜짝쇼를 할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절차적 하자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지난 위안부 피해자 합의는 문제가 많은 불공정 합의였다.

특히 이번에 밝혀진 이면합의의 내용을 보면 가히 충격적이다. 당초 우리가 주장했던 ‘사죄의 불가역성’이 아니라 ‘해결의 불가역성’으로 합의를 했다든지, 한국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이전 문제 등에 관여하겠다고 약속했다든지, 성 노예 표현을 자제하겠다는 등의 합의를 비공개로 했다는 것이다. 이런 굴욕적 합의가 도대체 내용적으로 유효성을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한 합의’라고 볼 수 있는가.

한·일 양국 간의 위안부 피해자 협상은 이제 시작이라고 보면 된다. 이어질 한·일 정부 간의 투명한 협상을 통해 그 내용을 발전적으로 고쳐가고 추후에 한·일 양국의 헌법이나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국회의 동의 등을 거쳐 조약으로 체결한 뒤, 양국 정상의 정식 서명과 비준을 거쳐 정식 조약으로 완성해야 한다. 그러한 위안부 피해자 합의만이 진정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는 합의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우리인데, 왜 정부가 합의합니까?” 피해자 중의 한 분이었던 김군자 할머니의 토로다. 지난여름에 세상을 떠나셨다. 남은 이들의 책임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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