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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한달째인 5월16일 청와대에서 유족들을 만나 “진상 규명에 유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면서 “유족들이 원하는 특검,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5월19일 대국민담화에선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발표했다. 세월호 유족들은 지금 박 대통령이 그 약속을 지켜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유족들이 청와대 앞에서 노숙을 하며 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간절히 원하는 것도 직접 그걸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면담 요구에 청와대는 “세월호법은 대통령이 나설 일이 아니다”라고 야멸찬 응답만 내놓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기대가 있었다. 유족들의 애타는 면담 요청, 야당과 시민사회의 ‘대통령 역할론’이 봇물 터지는 속에서 열린 어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피력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마저 저버렸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특별법, 세월호 유족들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외려 의회민주주의를 거론하며 야당과 유족을 압박했다. 세월호 유족들이 청와대로 달려가 대통령 면담을 바라는 호소문을 발표한 날 ‘민생 행보’를 한다며 부산 자갈치시장으로 떠나버린 박 대통령의 뒷모습 그대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가 25일 서울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농성 4일차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과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세월호특별법이 출구를 찾지 못하는 근저에는 정부·여당에 대한 유족들의 불신이 자리한다. 세월호 참사 초동대응은 물론 이후 수습 과정에서 보인 무능과 무책임이 쌓인 결과다. 특검 추천위원 중 여당 몫 2명에 대해 야당과 유가족의 사전동의를 얻는다는 ‘재합의안’에 대해 새누리당은 “야당·유가족이 추천하는 것과 다름없게 하겠다”고 말한다. 유가족들은 그걸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유족들의 불신을 덜고 설득하는 일은 박 대통령과 여당의 몫이다. 그 일을 야당이 맡을 순 없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은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있다.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할 책임 역시 그들에게 있다. 한데 세월호 유족들과의 면담조차 거부하면서 유족들에 대한 대화와 설득을 야당에 떠넘긴 채 뒷짐을 지고 있다. 유족들이 지쳐 나가떨어지길 기다리고, 세월호특별법을 민생과 연계해 여론을 호도하려는 발상이라면 착각이다. 세월호법이 끝내 풀리지 않고, 유족들의 눈물과 항의가 막다른 골목으로 치달을 경우 초래될 파국의 책임은 박 대통령과 여당에 돌아간다. 국회 입법권을 침해하라는 게 아니다. 유족들을 만나 그들의 아픔과 의견을 듣는 소통과 치유의 노력부터 보여달라는 것이다.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대통령과 만나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며 곡기를 끊고 노숙하는 상황을 언제까지 방치할 텐가. 참으로 모진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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