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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당권파가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최악의 폭거를 저질렀다. 엊그제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문 수습을 위해 열린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는 공당으로서 상상조차 하기 힘든 폭력사태로 얼룩지며 중단됐다. 이날 중앙위는 통합진보당에 주어진 중요한 기회였다.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에 표를 던진 200만명 이상의 유권자, 그리고 진보정치의 대의에 공감하는 모든 시민들은 숨을 죽이고 회의를 지켜봤다. 당내 제세력이 극적 합의를 통해 파국을 피하고 새 출발의 길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속절없이 배반당했다. 당권파 당원들은 1980년대 ‘용팔이 사건(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을 연상케 하는 난장판을 연출했다. 참담한 심경과 함께 개탄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당권파는 중앙위가 시작된 직후부터 중앙위원 불법교체 의혹을 제기하며 구호와 욕설로 회의 진행을 방해했다. 이들은 의장을 맡은 심상정 공동대표가 첫번째 안건인 강령 개정안 가결을 선포하자 단상에 난입했다. 주먹질과 멱살잡이 속에 조준호·유시민 공동대표는 얻어맞고 안경이 벗겨지는 등의 수난을 당했다. 공당의 대표가 당원들에게 집단폭행당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결국 심 의장은 회의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무기한 정회를 선언했다. 어제 중앙위 의장단은 혁신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 핵심 안건을 전자투표에 부쳤으나 당권파는 이 투표도 인정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운영위원들과 대화나누는 공동대표들 (경향신문DB)
모두가 보란듯이 폭력을 휘두른 당권파의 속내는 분명해 보인다. 어떠한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중앙위를 무산시켜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는 이달 30일까지 시간벌기를 하려는 모양이다. 이후엔 당권파의 핵심인 이석기·김재연 당선자 등이 국회의원 신분이 돼 당 차원에서 사퇴시킬 방법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당권파에게 묻고 싶다. 진보정치의 대의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칠 만큼 국회의원이란 자리가 대단한가. 부정과 폭력까지 동원해 금배지를 달고 난 뒤 누구를, 무엇을 대표하려 하는가.
진보진영은 당권파의 반민주적·몰이성적 행태를 바라보며 깊은 탄식을 내뱉고 있다. 그러나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과 인사들은 당권파만 탓하며 충격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진보진영의 구성원들은 모두 통합진보당 당권파라는 괴물이 생겨나는 데 방관하거나 방조하지 않았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낡은 진보는 확실히 죽었다. 그 시체 위에서 새로운 진보로 부활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낡은 진보에 조종(弔鐘)을 울리고 새로운 진보의 싹을 틔우는 데 진보진영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 특히 통합진보당을 구성하는 핵심 세력인 민주노총의 역할이 중요하다. 민주노총은 예고한 대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 철회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당권파를 압박해야 한다. 통합진보당 내부의 양심적 세력도 조속한 시일 내에 경쟁부문 비례대표 당선자·후보의 총사퇴를 관철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이들의 국회 입성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 진보정치의 재구성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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