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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사설]진보정당과 애국가

opinionX 2012. 5. 11. 10:48

유럽과 중남미 등의 진보정당, 더 정확하게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붉은 장미’를 당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장미의 촘촘한 꽃망울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날카로운 가시는 투쟁을, 붉은 색깔은 노동자들이 흘린 피를 의미한다고 한다. 총선 등 각급 선거가 있을 때 진보정당들은 당선자의 이름 위에 붉은 장미를 꽂아주거나 본인에게 직접 장미꽃다발을 안겨준다. 이처럼 진보정당은 보수정당에는 없는 고유한 문화를 갖고 있고, 다수 대중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통합진보당 등 한국의 진보정당은 ‘붉은 장미’ 외에도 또 다른 전통이 있다. 당내 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합창으로 구성되는 국민의례 대신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민중의례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민중의례는 군사독재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연유했고, 나중에는 국가주의적 의식을 거부한다는 차원에서 당의 전통으로 확립됐다고 한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7일 국회에서 열린 대표단회의도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경향신문DB)



통합진보당 유시민 공동대표가 엊그제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우리 당은 왜 공식행사 때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가”라며 “국민의례를 거부하는 것이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이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또 “왜 애국가를 부르지 않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가”라며 “이런 문제에 대한 토론이 금기처럼 돼 있는데 나중에라도 과감히 검토해서 국민들과의 관계에서 벽을 쌓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당내 비례대표 선거부정 사태로 당의 존립마저 불투명한 상황에 처한 통합진보당에서 애국가 문제가 불거진 것은 다소 생뚱맞다는 인상을 준다. 지금 시점에서 이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은 만큼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부정선거 문제가 슬기롭게 마무리되고, 당이 정상화된 이후에 차분하게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번의 문제 제기가 당내에서는 당연시되지만 정작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생경하게 받아들여지는 관행과 전통, 습속 등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군사독재 정권과 치열하게 싸우던 운동권 시절의 행동양식이나 문화가 언필칭 원내 제3당이 된 지금에도 관성적으로 통용된다면 대중과의 소통과 교감은 그만큼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번의 선거부정도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실천행위는 무조건 옳다는 당권파의 독선과 교만이 빚은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놓고 봐도 명백한 부정선거이고, 당내 상당수 인사들과 다수의 일반인들이 그렇게 여기고 있는데도 ‘부실선거’라고 강변하고 있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한다. 통합진보당이 진정 대중적 진보정당을 지향한다면 자신들만의 좁은 우물에서 과감히 뛰쳐나와 대중의 열망과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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