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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는 그제 기자회견을 통해 “육군 제2작전사령관 박찬주 대장 공관에서 근무한 공관병·조리병이 2016년 3월부터 올 초까지 정해진 임무가 아닌 다림질과 화장실 청소 등 허드렛일을 강요당했다”고 폭로했다. 사령관 부인은 소파와 바닥에 떨어진 발톱과 각질을 치우게 했고, 심지어 군에서 휴가 나온 사령관 아들의 속옷도 빨게 했다고 한다. 병사의 인격을 존중하기는커녕 공사 구분 못하는 군 고위층과 가족의 행태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박 사령관은 국방부가 병사들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감사에 나서자 어제 전역서를 제출했지만 그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육군 내부 규정에 따르면 군 지휘관은 공관에 장병을 배치할 수 있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지휘관들의 식사 준비나 근무시간 이후 업무 편의를 위한 예외적 조치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정해진 업무 외 다른 일은 시키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런데 박 사령관은 공관병에 대한 규정이나 장병 표준 일과 규정을 무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군 지휘관과 장병은 전투력 유지라는 국가의 명령을 나눠서 수행할 뿐 인격적으로 동등하다. 아무리 상명하복을 기본으로 하는 군 조직이라고 해도 이런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국가와 군 전체를 위해 명예롭게 헌신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모자랄 판에 사령관 개인과 가족에게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장병과 그 부대의 사기가 높을 리 없다.

군 지휘관들이 장병들을 머슴처럼 부리는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05년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일선 부대 지휘관들 사이에 부하를 사적인 용무에 활용하는 관행이 남아 있다”며 근절을 지시한 바 있다. 지난달에도 육군 모 사단장이 공관병을 폭행해 보직해임된 바 있다. 어느 부모도 제 자식을 남의 집 머슴 노릇하라고 군대에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휘관이 단 한 명의 공관병이라도 노예처럼 부리는 일이 있는 한 군 생활은 결코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될 수 없다. 송영무 국방장관이 지휘관의 공관 근무병을 철수시키고 민간인력으로 대체하겠다고 지시한 것은 올바른 결정이다. 차제에 병사가 지휘관의 개인 시중을 들게 하는 편법적인 부대 운영은 없는지 전 부대를 대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 송 장관이 전투를 위한 조직으로 군을 개혁하겠다고 한 만큼 비전투 부서에 배치돼 있는 장병들도 대거 전투 부대로 보내야 한다. 이번 일로 군개혁이 가속화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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