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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은 부정적이다. 그것은 노동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올바른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과 성장 위주의 경제시스템 속에서 노동을 하위수단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고착된 탓도 크다. 심지어 일각에서 노동자들을 종북세력으로 매도하는 매카시즘적 풍토마저 조성되고 있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노동에 관한 부정적 인식은 초·중·고부터 형성된다. 경향신문이 초등학생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노동을 부정적인 단어라고 생각한 학생이 전체의 60%를 넘었다. “일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며 노동은 강제로 하는 것” “자신의 직업을 즐겁게 하면 보람이고 괴롭고 싫다고 생각하면 노동”이라는 답변도 나왔다. 마트 계산원이 앉아서 일하는 모습에 대해 “건방져 보인다” “예의가 없다”는 반응이 다수인 답변 결과는 할 말을 잃게 한다. “힘들게 일하는 계산원들을 위한 당연한 배려”라고 답한 학생은 없었다. 손님은 왕, 소비자는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학생들에게 체화된 것이다. 반면 일하는 사람, 노동자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사회 전반의 그릇된 인식이 어디서 발원했는지 잘 말해준다.
노동자는 ____ 다. 왜냐면 ____ 때문이다., 초등학생들이 생각하는 비정규직의 뜻, '노동'이나 '일'을 들으면 떠오르는 말,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직업, 노동인권 감수성 체크리스트_경향DB
초·중·고의 노동교육 현실을 보면 학생들의 이런 인식을 나무랄 수 없다. 현행 초등교육은 노동 문제를 아예 다루지 않는다. 중·고교에서는 노동권 교육을 다루지만 총 1만시간 넘는 수업 시간 중 노동교육은 많아야 5시간에 불과하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학생들이 노동 문제를 노동자 입장에서 보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노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학생들은 알바 체험과 비정규직의 힘든 삶을 보며 노동은 힘든 것, 차별받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노동과 노동자, 노동단체에 대한 불신을 넘어 불온하게까지 여기는 사회 풍토의 배경에는 이처럼 부실한 노동교육이 자리하고 있다.
학생 대부분이 성인이 된 뒤 노동자로 살아가는 현실에서 노동의 소중함이나 가치, 노동자로서의 권리 등을 제대로 알아야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노동자로서의 행복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한국에서 천대받는 노동교육을 필수 교육으로 중시하고 있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제는 노동절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 양산지침 강행, 구조조정의 칼바람, 청년실업이라는 현실 탓에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길 여유는 없었다. 그런 바람을 갖는 것조차 사치스러워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학교의 노동교육은 중요한 일이다. 노동에 대한 왜곡과 부실을 바로잡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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