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결 이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정부는 인공지능 기술을 창조경제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겠다 등 인공지능 관련,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자녀를 바둑학원에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문의가 급증하는 가운데 초·중등학교 국가교육과정에 이미 도입된 컴퓨터 소프트웨어 교육뿐 아니라 코딩 교육도 필수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교육계에 확산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바둑 대결을 벌인 이세돌은 온 국민의 열광적인 응원과 사랑을 받았다. 엄청난 양의 수치화된 정보를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 순식간에 계산하는 냉혹한 인공지능을 상대로 체력적 한계와 감정적 동요를 극복하고 거둔 1승은 이세돌의 인간 승리였다. 이번 대국은 결과에 상관없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용기와 열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특히 최선을 다한 실패가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의미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된 바둑 대결로 구글은 엄청난 홍보 효과와 함께 주가 상승의 보너스를 챙겼고, 알파고 개발자 데미스 허사비스는 스타급 CEO로 급부상했다. 1976년 런던에서 태어난 허사비스는 체스 영재였는데, 17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컴퓨터게임 회사를 차렸다. 10대 시절 만든 시뮬레이션 게임을 수백만 개 파는 데 성공한 ‘게임 보이’는 다양한 장소를 넘나들며 인생의 경로를 바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학문적 기초를 닦은 후에는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런던으로 다시 돌아왔다. 창조적 인재가 몰리는 세계 도시 한복판에 있는 UCL에서 인지신경과학 분야 박사학위를 딴 그는 다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 동부의 MIT와 하버드에서 박사후 연구 과정을 밟는다. 이후 미국 서부의 실리콘밸리로 이동한 허사비스는 자신이 창업한 ‘딥마인드’를 6000억원에 인수한 구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한 단계 더 도약해 ‘알파고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번 알파고와의 대국으로 서울은 단번에 인공지능 기술이 아닌 ‘담론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기술의 위력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암울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에 빠졌다. 바둑판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벗어난 인공지능이 현실 세계의 다양한 영역으로 그 세력을 확장했을 때 얼마나 많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 침범당하게 될지 모두가 불안한 상황이다. 앞으로 바둑기사나 평범한 직장인뿐 아니라 의사, 교수, 법률가, 금융인 등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가들, 고급 지식노동자들조차 기존의 패러다임을 계속 고수한다면 인공지능과의 생존 경쟁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수능처럼 정답이 분명한 시험이나 암기력과 논리적 사고가 중시되는 고시를 거쳐 선발된 ‘알파고형 인재’들이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든 세상이 갑자기 와버린 것이다.
한정된 사고의 틀 속에서 정답을 골라내는 기술을 연마해 진학과 취업에 성공하고 사랑과 결혼도 조건과 점수에 맞춰 과학적으로(?) 하는 데 익숙한 이들은 이미 알파고의 세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알파고를 이기려면 이세돌이 쓴 책의 제목처럼 ‘판을 엎어라’ 전략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세돌은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의 특별한 교육철학에 따라 자연에서 뛰어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10대에 아버지를 여의고 객지생활을 할 때는 오락실에서 게임만 하던 ‘방황의 시기’도 거쳤다. 실제로 창조경제 중심지인 영국에서는 디지털 기기의 사용도 장려하지만, 야외에서 지도와 나침반을 들고 탐사하며 공간적 의사결정을 배우는 활동, 오감을 열어 다양한 세상을 체험하고 감성과 상상력을 기르는 창의성 교육도 여전히 중시된다.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사이버 공간에 갇혀 인공지능과 씨름하는 직종보다는 농부·시인·정원사·예술가·탐험가 등 컴퓨터와 별 상관이 없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급변하는 기술과는 상관없이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장인들의 직업 전망이 오히려 밝을 수 있다. 알파고의 시대에 적응하고 살아남으려면 컴퓨터와 경쟁이 불가능한 아날로그적 장소와 상상력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고, 자연 속에서 오감을 열어 체험하는 방법을 가르치며 다양한 환경에서 감성과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활동이 더 장려돼야 하지 않을까?
■지리 꿀팁
어려서부터 지리답사와 야외활동을 통해 모험심을 기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영국은 세계 지리교육의 중심지다. 수백년 역사를 지닌 영국의 이튼·킹스 등 사립학교에서 지리는 필수과목이었고, 지금도 옥스퍼드·케임브리지 등 영국 대학에서 지리학은 문·이과를 연계하고 통섭을 주도하는 융합 전공이다. 독일·프랑스 등 유럽의 대학에서도 지리학은 세상이 변화하는 현장으로 달려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학문으로 인식되지만 세계 최강으로 알려진 미국 명문대학에서 지리학의 위상은 의외로 낮다. 사회과 교육의 일부로 지리를 실내에서 대충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미국과 한국은 세계에서 학교 지리교육이 가장 약한 나라에 속한다.
김이재 | 문화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주제별 >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노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 초·중·고 교육부터 문제다 (0) | 2016.04.29 |
---|---|
[기고]대학, 인권을 논해야 하는 이유 (0) | 2016.03.27 |
[기고]체계적인 독도 교육이 필요한 때 (0) | 2016.03.20 |
[기고]교육부를 수술대에 (0) | 2016.03.16 |
[공감]황무지에 진정 봄을 불러들이는 길 (0) | 2016.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