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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을 불쑥 제안했다가 당 의원들의 반발로 한나절 만에 철회했다. 긴급 의총에서 다수 의원들은 충분한 논의 없이 양자회담을 졸속 결정한 그에 대해 강력 성토하며 회담 취소를 요구했다고 한다. 추 대표의 이날 깜짝 제안은 시기도 형식도 뜬금없었다. 두 사람이 만나 정국 수습이란 큰 틀의 의제를 놓고 담판을 짓겠다고 하지만, 견해차가 커 애당초 성과를 기대하기는 난망했다. 대통령이 퇴진하겠다는 분명한 의사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서로 할 얘기만 하고, 검찰 조사를 앞둔 박 대통령의 위상만 높여주는 회담은 시민들의 부아만 돋울 뿐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회담 제안도 다른 야당들과 사전 협의 없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민주당 지도부 가운데서도 일부만 알고 있었을 정도로 급작스럽게 발표됐다고 하니 돌출 성격이 짙다. 추 대표가 100만 촛불 민심을 대표하는지도 의문이다. “민주당이 제1야당이지만 국민들은 민주당에 수습권한을 위임한 바 없다” “국민이 추미애에게 영수회담 하라고 촛불 든 것 아니다”라는 반발에 부닥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시민과의 공감 없이 추진되는 회담은 추 대표가 민심을 독점한 듯한 오만함으로 비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추 대표의 독단적 의사결정은 한두 번이 아니다. 대표 취임 직후 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가 역시 여론의 반발에 취소했고, 과거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엔 비정규직 법안 단독 처리를 강행한 바 있다. 이번에도 당내에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만난 격”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의 독단이 다시 도졌다”고 우려하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사태는 4·19혁명, 6월항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촛불의 바다에서 ‘대통령 퇴진’이란 말이 더는 새삼스럽지 않게 됐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어떤 꼼수도 통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은 야 3당의 긴밀한 공조가 중요한 때다. 국민의당·정의당은 일찌감치 ‘퇴진’ ‘하야’로 당론을 정한 반면에 민주당은 100만 촛불집회를 본 뒤에야 가세했다. 대선주자들의 의견도 중구난방이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 있는 제1야당 대표라면 야당 내 이견을 조율하고 통일된 안을 만드는 데 앞장섰어야 한다. 그럼에도 대통령과의 회담을 우선한 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 민심을 이용하려는 행태로 볼 수밖에 없다. 거대한 노도 앞에 소리(小利)를 챙기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추 대표는 이번 소동을 놓고 촛불 민심에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자중자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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