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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예정대로 26일 개헌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청와대가 밝혔다. 이날 오전 국무회의가 정부 개헌안을 의결하면, 문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현지에서 전자결재로 국회 송부와 대통령 개헌안 공고를 승인함으로써 개헌 발의 절차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1987년 헌법 개정 후 30년 만의 개헌안 발의다. 그런데 개헌 논의의 주인공이어야 할 국회는 하루 전날까지도 기싸움만 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발의로 개헌 물꼬가 트인다고 한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반대 입장을 피력하며 야당을 향해 공동대응하자고 주장했다. 국회와 여야 정치권의 무책임이 절망스럽다.

그중에서도 개헌 저지선을 확보한 한국당의 태도는 후안무치 그 자체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25일 “(여권이) 개헌을 중지하지 않으면 사회주의 개헌 음모 분쇄 투쟁에 전 국민과 함께 장외로 갈 것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천명한다”며 장외투쟁을 예고했다.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가 국민과 국회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지만 정작 그 말을 들어야 할 대상은 한국당이다. 지방선거 동시 개헌 약속을 깬 것은 물론 개헌안조차 내놓지 않은 한국당은 그 누구도 비난할 자격이 없다. 협상은 거부한 채 일방적으로 사회주의 개헌안이라고 몰아붙이는 데 동의할 시민은 없다. 게다가 한국당은 이번 개헌안에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장기집권 음모가 숨어 있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개헌하면 문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호도하는데, 시민을 바보로 아는 처사다. 개헌 정국에서 아무 역할도 못하는 민주당도 실망스럽다. 대통령과 야당 사이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개헌 무산에 대한 책임을 야당에 지워 지방선거에서 득을 보려는 발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개헌안 발의가 대통령의 권한인 것은 맞지만 발의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시민의 권리장전을 30년 만에 새로 쓰는 개헌은 시대적 요청이다. 문 대통령이 이대로 개헌안 발의를 강행하고 야당들이 반발하면 개헌안은 부결될 게 뻔하다. 모처럼 맞은 개헌의 기회가 날아갈 경우 문 대통령과 여야가 역사에 져야 할 책임은 가볍지 않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25일 여야 5당이 참여하는 4개 교섭단체 협의를, 그리고 김성태 원내대표는 야4당 합동 의총과 공동대응을 제안했다. 어떤 형식이든 여야가 진지하게 개헌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선거제도 개선뿐 아니라 총리추천제 도입도 논의할 수 있다. 국회가 타협안도 내놓지 못한 채 대통령안만으로 표결에 나서는 불상사는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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